SO what 나는 나야!
화창한 봄! 오늘도 키즈카페에서 이 책을 쓰고 있다. 봄은 가능성의 계절이다. 겨울에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바닥에서 초록빛 새싹이 돋아난다. 주위를 보면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할 준비한다. 겨우내 숨죽어 있던 생명이 살아 숨을 쉬듯 살아나는 계절이 봄이 아닐까 한다.
차를 끌고 성남에서 용인까지 키즈카페에 가기 위해 운전하고 가는 도중 저번 주까지는 없었던 벚꽃과 개나리가 금세 피어나고 있었다. 아이도 벚꽃이 피었다며 보러 가고 싶다고 한다. 오늘은 이 책을 집필해야 해서 아이와 키즈카페에 가고 내일은 봄의 기운을 느끼러 에버랜드에 가기로 약속했다. 키즈 카페에 도착해 어김없이 책을 읽고, 책을 쓴다.
시간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아이와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10까지 용인으로 넘어온다. 용인으로 넘어오는 이유는 키즈카페 종일 부모와 아이 포함 36000원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키즈카페를 성장의 공간으로 투자라 생각하지만, 무제한이 아닌 시간당 유료로 운영하는 키즈카페를 종일 있기는 부담스럽다. 키즈카페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아이는 본격적으로 친구들과 놀기 위해 탐색에 들어간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니 오늘 하루같이 놀 친구들이 필요해서이다. 몇명과 이야기를 해보고 공통관심사가 있는 친구와 금세 친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보이지 않고 그 친구와 노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본격적으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뒤쪽에 자리 잡으면 시야도 트이고 혼자만의 공간이 있는 것 같아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뒤쪽에 자리 잡다 보면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무심코 엿듣게 된다. 일부러 듣는 건 아닌데 유독 크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 나도 모르게 듣게 된다.
저쪽 테이블에 3명의 엄마가 둘러앉았다. 제법 친해 보였다. 본격적으로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한 엄마가 요즘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어 유치원비용만 130만 원 정도 든다고 한다. 한 엄마가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영어 유치원 벌써 다닐 필요가 있어? 너무 빨리 보내는 거 아니야? 다른 엄마가 이야기한다. 요즘 유치원 때부터 보내는 거 몰라? 빨리 보낼수록 아이들 조기교육에 좋아.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아이들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지 뭐! 내심 반대편에 앉아 있는 엄마는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싶지만, 형편이 녹록지 않아 보낼 수 없다는 부러움의 표정과 아쉬움의 표정이 교차했다. 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화 내내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 위주로 대화가 이어졌고 다른 엄마 한 명은 맞장구치기 바빴다. 나는 속으로 기분 좋게 키즈카페 왔다 비교심 때문에 기분만 상해서 집으로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악의 선물은 비교심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가지 선물을 줄수 있다면 비교심이란 선물을 준다면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없으며 갖고 싶어 고통스러워하고 막상 가지면 허탈함에 나태해진다. 고통과 나태함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지만 이 중간에는 비교심이라는 악마가 존재한다. 비교심이 한번 들어서면 떨쳐 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내 안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괴롭히는 윤활유로 작용한다. 비교심에는 장사가 없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 높은 곳을 쫓는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과 비교한다면 불행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비교심은 더 큰 비교심을 낳고 비교를 통해 자존심이 바닥을 치면 긍정적 인걸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부분만 찾게 되면서 나를 고통 속에 몰고 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준에서도 비교심을 걷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내 아이의 현재 잘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아이의 현재 수준을 객관화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걸 찾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내 아이를 객관화 하지 않고 더 잘하는 친구, 그보다 더 잘하는 친구와 비교를 한다면 아이의 부모는 어떤 천재를 낳아서 기른다고 해도 비교를 통해 내 아이를 고통 속에 기를 수밖에 없다. 아이를 비교하게 되면 장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아이가 더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내 아이의 장점이 보일지는 만무하다. 오히려 단점을 찾게 되면서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삿대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친구들은 영어도 잘하는데 너는 이게 뭐야” “다른 친구는 스스로 한 원에 보내 달라고 부모한테 이야기하더라 너는 뭐니” “공부할 생각은 있는 거고?”
사실 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미술에 재능이 있다. 미술을 할 때면 종일 창작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부모는 다른 친구와의 비교를 통해 공부만의 잣대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기때문에 결국, 아이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아내 혼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과거에 비교심 덩어리였다. 책을 읽고 책을 쓰기 전까지는 비교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자존심이 워낙 세다 보니 남들보다 무조건 앞서 나가 있어야 했다. 그건 금전적이든 사회적지 위든 모든 게 앞서 나가야 성에 찼다. 돈이 많은 사람, 좋은 차를 타는 사람, 좋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질투했다. 아이에게 돈을 쏟아부으며 교육을 한다고 하면 나는 부모로서 잘하는 건가에 대해 고민하다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고통스러워했다. 자괴감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비교심이 가득했다. 비교심으로 가득하면 주변에 시비를 걸던가 모든 사물을 단점으로 인식한다. 세상을 단점투성이로 바라보니 잘되는 일도 망칠 수밖에 없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비교심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비교심을 어떻게 하면 끊어 낼 수 있을까 분석하기 시작했다. 비교심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악의 선물이자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비교심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아내와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고 나조차도 고통을 받으며 살아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교심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우선 나만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대나무의 뿌리가 단단히 땅속 깊숙이 묻혀있듯이 내 기준이 단단한 대나무가 되어야 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말이다. 내 기준이 명확히 서야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항상 내가 정한 기준에서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 또한 스스로 받아들여야 발전할수 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분명한 내 기준으로 모든 걸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주위에 물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최종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 또한 내가 졌을 때 단단한 나만의 기준이 생기게 된다. 기준이 생겼다면 책을 읽을 걸 추천한다. 글을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면이 단단해지고 생각과 철학이 제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명품 가방을 사고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내면의 충만감은 그때뿐이다. 오히려 내면이 단단하지 않으면 더 좋은 차 더 좋은 명품 가방을 비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내면이 성숙하면 생각이 명품이 된다.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면서 남들이 보지 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여기까지 올라온다면 소비를 통한 행복이 아닌 생각이 성숙해지면서 행복의 기준점이 바뀌게 된다. 내면이 꽉 들어차니 더 이상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만나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쓰는 어휘나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이제는 명품을 치장하고 돈이 많은 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이 명품인 사람과의 대화가 더 설레고 배우고 싶은 동경의 대상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인품 또한 훌륭하다. 비교심을 끊어 내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한순간에 비교심을 끊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조금씩 변화해 나갈수 있다.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내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해야 내 아이도 사랑하고 아이만의 장점을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비교심이 순간순간 나를 찾아올 때면 스스로 주문을 걸어보자 SO what 나는 나야! 나는 나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치고 나면 한결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비교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비교심이 들때 외치는 주문 SO what 나는 나야! 나는 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