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편
90세에 자산이 1000억 원인 노인이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회장직에서 내려와 노후를 보내고 있다. 노인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여태까지 살았던 과정, 사회는 노인을 세상에 없어서 안 될 존재로 생각한다. 누구나 우러러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세월의 흐름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밖에서 보는 사람은 알 리 없다. 다리가 불편하고 움직이기도 버겁다. 생각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죽음이라는 문턱이 코앞까지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 나에게 무한대로 펼쳐진 듯했다. 뭐든지 자신감이 있었고 사회를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90세로 나에게 남았을 가능성은 이제 흔들리는 희미한 불빛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2단계에서 부의 그릇을 찾기 위해 시간이라는 소금을 넣어 나만의 부의 그릇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나의 그릇을 찾는 방법 중에 시간은 소금과 같은 역할은 한다면 죽음은 설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떡볶이를 만들 때 맛있는 떡볶이로 조리가 되려면 설탕과 소금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된 고추장이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 어느 한쪽이 과하게 들어간다면 달거나 짜서 먹을 수 없는 떡볶이가 만들어진다. 나의 부의 그릇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영원히 살 수 없다고 느낄 때 현재에 충실할 수 있고 나만의 기준으로 지금 도달한 부에 만족하며 살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길을 걷다 불행의 사고로 죽을 수 있다. 죽음을 내 삶에 대입한다면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 죽을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사다. 즉 죽음을 대입해본다면 돈이 우선이 될 수 없다. 오늘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고 지금 살아서 숨 쉴 수 있어 웃고 떠들며 좋은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미래의 죽음을 떠올려보자. 오로지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마지막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대기업 회장처럼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돈을 필요하지 않다. 현재 나는 90살의 미래의 나로 와있다.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겨우 집안에만 돌아다닐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 자산은 1000억이나 남아있다. 죽음 앞에서 1000억은 아무 의미 없어진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걸 반납하고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내 부의 기준에 대입해보자. 현재 나는 배당금과 오피스텔 수입으로 월 500만 원의 자동수입을 만들어 냈다. 결혼했고 아이가 한 명 있다. 자동수입이 발생하기 전까지 나는 회사의 노예처럼 살았다. 매일 기한을 맞추느라 야근의 연속이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는 자고 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조차 나에게 사치로 바뀌었다. 야근을 자주 하니 몸도 망가져갔다. 이러다가 회사에 다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부터 이대로 끌려다니는 삶은 내 진짜 인생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자동수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수많은 경제 서적을 습득하고 강연, 모임 등 도움이 되는 건 주말에도 필요하면 따라다녔다. 현재 나는 자동수입 500만 원을 만들어 내고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동안의 치열했던 과정을 책으로 집필해 나만의 “퍼스널 브랜딩”을 만들고있다. 책 제목은 “회사원으로 자동수입 500만 원 만드는 비법”이다. 500만 원이 부자들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수많은 회사원에게는 자동수입 500만 원은 꿈과 같다. 시간에서의 자유를 얻고 자동수입으로 만족하며 지금은 아이와 아침에 학교를 바래다주는 그 시간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
나는 비교를 끊어내고 나만의 부의 그릇을 찾았다. 나만의 온전한 시간 속에서 내 그릇은 500만원 이지만 나는 훌륭한 부자다. 가슴에 부가 한가득 들어차 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나가자, 그 경험이 나의 “퍼스널 브랜딩”을 만들어줬다. 나이 마흔에 은퇴해 이제는 강단에서 강의하는 나를 꿈꾼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내 안의 거인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서는 부는 무용지물이다. 나의 현재의 그릇에 만족하고 죽음이라는 설탕을 대입해본다면 현재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라!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지은 시 가운데 죽음을 나타내는 두 격언이 있다.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나는 언젠가 죽는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부의 그릇을 찾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위를 바라본다면 현실에 충실히 살 수 없다. 항상 미래의 목표를 현재에 끌어다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나만의 부의 그릇을 모두가 찾았으면 하는 이야기다. 시간이라는 소금과 죽음이라는 설탕을 내 삶에 대입해본다면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돈은 의미가 없어지고 죽음 앞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나만의 그릇에 만족하고 부의 그릇을 빨리 찾아간다면 과정을 즐기며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나한테 현재 필요한 건 시간적 자유와 월 500만 원이다. 자동수입이 만들어진다면 평생을 내 삶을 온전히 즐기며 살 수 있다. 그럼 당신의 현재 부의 그릇은 500만 원이다. 자신의 그릇이 500만 원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 한 것이다. 만약 내가 현재 500만 원에 만족해서 삶을 즐겁게 살아간다면 그곳에서 멈추면 된다. 더 위를 바로 보지 말고 비교하지 말자. 죽음 앞에서는 내 그릇 이상 필요 없어지게 된다. 나는 평소에 500만 원짜리 그릇을 가지고 있는데 로또에 당첨돼서 20억이라는 자산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월 500만 원이면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나는 책을 읽고 등산을 하고 가족과 간혹 외식하고 여행 가는 게 전부다. 죽음 앞에 이르러 자동수입 빼고 20억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자신의 부의 그릇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멈추기 위해서는 분명한 건 시간과 죽음이라는 관계를 내 삶에 투입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현재를 즐기면 멈출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삶은 충실하게 살되 두기지 의미를 가슴속에 새긴다면 분명 과정이 즐겁고 신날 것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은 날려버리자. 현재 나는 나의 부의 그릇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곳에 도착하는 과정도 현재에 충실했을 때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너무 돈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나의 진짜 “돈 그릇”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