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실 나가듯
마지막 날 아침. 매일 다른 호텔 조식을 먹는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매일같이 제대로 된 조식을 먹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 또한 엄마와 함께이기에 행할 수 있었던 일이고, 내 머릿속에 호텔=조식이라는 이론을 성립시켜 주었다.
오늘은 공항에 가야 하기에 간단한 일정을 잡았다. 체크아웃 전 근처 신사에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조경도 잘되어 있고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가깝다면 한 번쯤 가볼만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이 신사에는 명성황후 시해 당시 사용됐던 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걸 몰랐지. 갔다 와서 알았지. 그리고 불로장생과 번성의 신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사전 정보를 잘 얻지 않는 나는 모든 걸 여행 후에 복습하는 경향이 있다. 아쉬우면 나중에 또 가서 다시 보자!!라는 생각을 가졌달까.
신사 구경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걸어가는 길. 이른 시간이라 아직 가게들도 문을 열기 전이고 출근하는 사람들만 조금씩 보인다. 구경 잘하고 숙소 가는 길 엄마와 약간의 마찰이 생겼는데... 어제 돈키호테에서 산 속눈썹을 붙이고 일본 사람들처럼 인형 화장하고 싶었는데 속눈썹 풀이 안 들어있지 뭔가. 근데 편의점 본드 너무 비싸서 숙소로 그냥 왔는데 아무래도 해보고 싶어서 나 혼자 다시 갔는데 돈을... 달러를 들고 갔네. 다시 숙소. 시간만 낭비하고 이도저도 못해서 결국 엄마랑 한판 하고 나는 마지막 위시 리스트인 화장을 포기하고 그냥 붓고 못생긴 시루떡 같은 얼굴로 마지막 여정을 보내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한국에선 창피해서 못하니까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운명이 아니었나 봐.
늦은 오후 비행기라 시간이 꽤 남았다. 쇼핑센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모모치 해변에 갔다.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해변이라는데 주변이 아직 미완성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날도 흐리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별 볼 일 없게 느껴졌다. 후쿠오카 타워는 외관만 보고 지나쳤다. 개인적으로 해변보다는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던 후쿠오카 도서관 쪽이 더 이쁘고 걷기에 좋았던 것 같다.
가벼운 산책 후 하카타 역으로 돌아온 우리. 역 옆의 터미널 건물에 유명하다는 오코나미야끼 집을 찾아갔다. 시원하게 맥주부터 한잔하고 콘오코나미야끼랑 야끼소바를 주문했다. 우리는 바 테이블에 앉았는데 앞에서 현란하게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전문가의 포스가 마구마구 느껴졌다. 혼자 온 손님들도 많았고 조금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테이블이 거의 만석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괜찮았던 것 같다.
지인의 부탁으로 마지막으로 하카타 역에서 구매한 일 포르노 델 미뇽 크로와상. 이거 사들고 한국 가서 다음날 출근할 때 들고 가서 다 같이 나눠먹었다. 물론 내가 아니고 부탁한 지인이 우리와 함께 공유하는 아량을 베풀어 주었다. 크게 생각나는 맛은 아니지만 간식으로 한 번쯤 사 먹을만한 것 같다.
마지막 날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마실 나가듯 어슬렁어슬렁 거닐다 온 것 같다. 처음 가 본 일본이었는데 욕심부리지 않고 잘 지내고 왔다고 생각한다. 방이 없어서 고쿠라까지 가서 숙박을 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인생 오뎅포차를 만나고, 비가 오는 유후인, 따뜻했던 료칸, 버스를 놓칠까 전전긍긍할 때 말도 통하지 않는데 택시 잡는 거까지 도와준 귀여운 일본 소녀들. 그리고 두 손 가득 들고 온 돈키호테 쇼핑품목들.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는 여행이었다.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