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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pr 12. 2021

여행의 의미, 삶의 의미


 작년 초 까지만 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겨울이면... 내년 초쯤이면 갈 수 있을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기대가 사라졌다. 추억을 먹고산다는 건, 훗날 다시라는 기약이 가능할 때의 일인 것 같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것마저도 예전과는 다른 불편과 경계를 가지고 해야 하는 여행.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자유. 여행이 인생의 낙이었고 꿈이었던 나에게는 사실 지금 삶의 기대가 사라졌다. 


 잠이 들지 않는 어느 밤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삶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힘없이 늘어져 내리는 이유가 여행을 못 가서인가?

코로나 전에는 일이 지겹고 버티기 힘들 때마다, 아니 실은 거의 매일 밤마다 잠들기 전 수도 없이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었다. 그리고는 싼 가격에 홀려 충동적으로 티켓을 끊고 한껏 들뜬 마음을 가지고 미소 지으며 잠들기도 했고, 여행 날짜만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 하고 달력을 보며 그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일상을 반복하며 여행을 기다리는 낙으로 일상을 버텼던 것 같다. '나'이지만 '나' 아닌 것 같은 어정쩡한 존재로 매일 비슷한 일과를 보내다가 여행을 가면 그곳에선 좀 더 대범하고 과감한 내가 되었다. 평소엔 눈치 보여 입지 못했던 화려한 옷부터 꼬장꼬장한 몰골로 늘어진 티셔츠에 코끼리바지도 입어보고, 사치라고 여겨졌던 조금 비싼 음식도 한 번쯤 통 크게 사 먹고, 없던 용기까지 끌어모아 공포를 이기고 높은 나무 위에서 다이빙도 해보고, 비행기 티켓 하나 달랑 들고 가서 인터넷도 없는 곳에서 헤매어 보기도 하고, 버스를 잘못 타서 길을 잃었지만 울지 않고 도움을 요청해 어찌어찌 길도 찾아가는 모험과 도전들도 해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어 고독의 시간도 가져보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1분도 아깝지 않게 놀고먹고 쉬면서 하루를 온전히 즐기면서 보낸다. 그렇게 분출하지 못했던 에너지들을 쏟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내가 된다. 나의 삶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하는 여행... 그게 없어서인가. 삶이 참 버겁다. 표출할 곳이 없다. 


 2020년, 작년에 나는 일을 그만두고 6개월가량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지니스 한번 타보겠다고 마일리지 신용카드로 꼬박 5년을 모아 4월에 내 사랑 홍콩에 잠시 머물다 이스탄불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 해 논 상태였다. 이스탄불을 거쳐 이집트 다합에 가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조지아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매일 와인을 한 병씩 정복하다가 발리에 가서 요가를 하고 치앙마이에 가서는 카페를 돌며 한량 같은 시간을 보내다 돈이 떨어지면 거지꼴로 집으로 돌아오는 가슴 벅찬 계획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꿈만 꾸던 장기여행이라는 걸 해보는 건가? 생각하며 일을 그만 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나타났고, 1월 말,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기 전에 일터에서 먼저 잠정 휴업 통고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쯤, 홍콩행 비행기가 취소되었고, 그 뒤에 다시 이스탄불행 여정도 자동 취소되었다. 그렇게 나의 2020은... 공기 중에서 분해되었다. 

일도 없고 여행도 없고 이제 어떡하지... 의욕이란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삶의 이유는 늘 생기는 것 같다. 여행의 꿈은 사라졌지만 이 힘든 시기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다른 이유로 잘 살아가고는 있다. 그리고 백신이 나온 지금, 내년이면 어디 가까운 곳은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여행의 기대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립다. 잠들기 전 스카이스캐너를 뒤적이며 다음엔 어디갈지를 고민하며 잠들던 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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