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소비하고 있을까?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던지는 질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포스터
세 가지 탐욕이 빚어낸 이야기
(왼쪽부터)솔로몬, 매디 보웬, 대니 아처. 영화 블러드 다이몬드 중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는 다이아몬드에 눈먼 자와 가족을 구하려는 자, 그리고 특종을 쫓는 자, 세 명의 각기 다른 탐욕이 등장한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은 한때 유토피아로 불리던 곳 시에라 리온을 피 냄새 진동하는 곳으로 바꿔놓는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행을 기다리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일뿐이다. 솔로몬도 마찬가지다. 아들 디아가 매일 5km나 되는 거리를 노끈으로 만든 허술한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다. 학교 가는 길은 곧,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여정이다. 하지만 반군이 마을을 덮치면서 그의 소망은 저 멀리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솔로몬은 다행히 괜찮은 노동력으로 인정받아 반군의 군자금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의사를 꿈꾸던 디아는 반군으로 키워지고, 나머지 가족은 난민수용소에 수용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크기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한 솔로몬. 하지만 다이아몬드에 혈안 된 감독관의 매서운 눈을 피하지 못하고 발칵이 나는가 싶다가 불시에 터진 폭격 덕분에 목숨도 살리고, 다이아몬드도 뺏기지 않게 된다.
그렇게 그 폭격은 솔로몬에게 전화위복이 된다. 다이아몬드를 밀수하고,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해주는 대니 아처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은 사회적으로 나쁜 일을 한다고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악인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가 솔로몬이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든든한 조력자가 돼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지만 그러려면 솔로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는 어려웠다. 그는 방법을 모색한다. 하지만 둘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역부족이다. 한 명이 더 가담한다. 특종을 쫓는 기자 매디 보웬이다. 그는 기꺼이 기자의 특권을 솔로몬이 가족과 재회할 수 있도록 돕는데 쓴다. 그렇게 세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쫓으면서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얼핏 축복으로 보이는 다이아몬드라는 천연자원이 어떻게 아프리카 작은 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진짜 피해자는?
총을 쏜 자 vs 총을 맞은 자
반군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족을 살해하는 금수와 같은 모습이 담겨있었다. 반군은 그렇게 내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충실한 기사에서는 인간미와 관련된 반군의 면모를 1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영화를 통해 반군이라는 이름에 묻힌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9년, 시에라 리온엔 반군의 폭격으로, 아니,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이권 싸움으로 가족을 잃고 혈혈단신이 된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고 있는 검은 손도 있었다. 바로 반군이다. 반군으로 성장하게 될 그 어린이들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반군을 접하고, 반군의 사상이 주입된다. 그렇게 점차 그들의 색에 물들다 반군이라는 비이성적인 집단에 속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사회의 악이 된다. 하지만 이 피 비린내 나는 현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었다. 반군에 의해 부모를 잃고, 반군에 의해 살인 병기로 태어나 살인을 저지르고, 그 끔찍한 일에 수반되는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 반군의 이미지에서 나약한 인간이,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얼핏 얼핏 보였다. 만약 그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학교에서 공부하며 각기 다른 꿈을 키우며, 방과 후엔 친구들과 축구를 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않았을까. 가끔 부모님께 응석을 부르리면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않았을까. 실제 일어나지는 않았어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상이 안타깝게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일상은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깨졌고, 다시 원상태로의 되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든 일에 도전하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솔로몬은 아들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반군 캠프에 잠입, 반군이 된 아들을 찾는 데 성공하는데..... 아들은 그런 아빠를 앞에 두고 어떤 말을 건넬까. 그 둘은 해피엔딩이라는 훈훈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던지는 질문은?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원치 않는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수는 무려 1억 2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5~14세 아이들이 포함된 수치다. 또 지구촌 어느 곳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워지기 위한 욕망을 위해 죄 없는 동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한 개인을, 한 가족을, 더 나아가 한 나라를 이렇게 망가뜨린 가해자는 누굴까. 누구에게 우린 비난을 던져야 할까. 다이아몬드로 군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반군의 생존 전략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다이아몬드로 큰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업가의 탐욕을 탓해야할까. 아니면 다이아몬드에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의 소유욕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를 탓해야 할까. 그도 아니라면 이 모두의 잘못이 초래한 결과일까.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은 공식적으론, 40개국이 분쟁 지역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방지하는 ‘킴벌리 협약’에 서명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진짜 끝이 난 걸까. 수천 명을 난민으로 만들고, 수백만을 죽음으로 이끈 그 문제의 다이아몬드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모순적인 소비자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누리는 달콤함이 실은 누군가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현상 뒤에 감춰진 진실, 그 진실에 관심 가져야 할 때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성숙된 자본주의를 위해, 지금보다 조금이도 살기 좋은 지구촌을 위해. 이 영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