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기
혼자 살다 보면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제일 귀찮다.
자취생활 초반에는 사 먹거나 인스턴트로 때웠지만 십 년이 지나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갓 지은 밥처럼 정성이 담긴 음식 한 끼가 주는 든든함이 그리워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간단하게나마 나에게 집밥을 대접하기 위해 자취 10년 만에 요리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가까운 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인터넷으로 요리법도 검색해봤다. 한창 요리에 푹 빠져있을 무렵 집밥 열풍을 일으킨 백종원 씨가 티브이에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없으면? 안 넣어도 돼요~’라는 말은 그가 방송에서 자주 하는 말이었는데, 지금까지 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멘트이기도 했다. 구수한 말투로 연신 “괜찮아유~”라며 조금이라도 쉽게, 편하게 설명해주는 요리 선생님은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싱크대 앞에 서서 가스 불을 켜게 했다. 백종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300만 구독자 가운데 기꺼이 한 사람이 된 이유는 요리 실력도 출중하지만 그의 말투가 나를 편안하게 했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을 보듬는 힘이 있다. 괜찮다, 할 수 있다, 한번 해 보세요, 별거 아니죠? 같은 백종원 씨의 말이 긍정적인 신호가 되어 나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처음 요리할 때 부담스러운 일 중 하나는 칼질이다.
아직 도구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 반듯하게 채소를 썰기가 어렵다. 나 같은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집밥 요리 중 하나는 감자 짜글이. 감자와 양파를 쫑쫑 썰어서 양념과 함께 푹 익히면 끝! 다 익으면 밥에 쓱싹 비벼먹을 수 있어 감자 모양이 조금 삐뚤어도 괜찮다. “물 더 넣으며 되니까 걱정 말고 넣으세요”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믿고 자신 있게 간을 맞춰본다. 싱거우면 간을 하고, 짜면 물을 더 넣으면 된다. 프라이팬에 올려둔 음식이 탈 거 같으면 잠깐 불을 끄고 양념을 하면 된다. 채소 한두 가지가 없어도 맛 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마트에 가서 제철음식을 찾는 재미도 생겼다. 봄에 냉이 넣은 된장찌개, 여름에 가지, 가을 무로 만든 무밥과 생채나물. 간단하지만 계절 담은 밥 한 끼를 차려 먹을 수 있다. 도마 위 사각사각 칼질 소리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도 주방에서 듣는 기분 좋은 ASMR이 된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불 앞에서 간을 맞추며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완성되는 따뜻한 한 그릇의 집밥. 백종원 씨 말대로 요리는 어렵지 않았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면 수습하면 되고, 재료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들면 됐다. ‘별 거 아니쥬? 쉽쥬?’라는 말로 거듭 나를 달래가면서. 실수를 인정하면 의외로 실수가 두렵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건강한 식습관만큼이나 건강한 언어습관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이든 처음엔 서툴고,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도 생겨난다. 그럴 때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보듬어준 때가 있었나? 자문해보면 그렇지 않다. 힘들고 안 좋은 일에 부딪힐 때면 ‘더 잘했어야 하는데…’ 하고 자책하기에 바빴다.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기에 서툴지만 건강한 집밥처럼, 마음을 일으키는 든든한 응원군이 필요하다.
언어 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정성스레 만든 집밥이 몸의 기운을 북돋아주듯이 정성스레 쓰여진 글은 마음의 양식이 되고 위로가 된다. 한 권을 읽고 단 한 줄만이라도 가슴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햇빛과 공기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좋은 말과 글이 마음결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아침에는 ‘오늘도 좋은 하루!’ 하고 혼자 인사를 하기도 한다. 특별한 주문은 아니지만 말이 주는 힘이 있다. 레시피와 조금 달라도 요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씩씩하게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