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미술관에서 만난 자화상

여행노트 - 영감

by 화정

네덜란드 미술관 여행


첫 유럽여행은 네덜란드입니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한 때가 크리스마스의 저녁. 그래서인지 더욱 특별한 기분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이지만 입국 심사대의 직원은 서울에서 처음 방문한 관광객을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 주었고, 로테르담에서 유학 중인 친구는 예쁜 꽃다발과 함께 마중을 나왔습니다. 연말의 유럽 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네덜란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영토의 절반 정도로 크진 않지만 과거 해상무역을 통해 제국을 이루었던 네덜란드에는 많은 유적과 볼거리가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꽃 경매 시장이 열려 튤립 외에도 어딜 가나 싱그러운 꽃이 즐비하고, 암스테르담의 운하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운치가 있습니다. 트램이 지나가고 다닥다닥 세로로 길게 늘어선 건물이 어울어진 풍경이 딱 우리가 기대하는 엽서 같은 모습입니다. 암스테르담이 고전적인 느낌이라며 로테르담은 큐브하우스와 같이 독특하고 현대적인 현대 건축물이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며 새로운 형태의 현대 건축물이 시도되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건물투어를 온 만큼 유명하다고 합니다.


유럽은 여러 나라를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일주일 동안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하루 만에 매일 근교 도시를 둘러보기 충분한 거리입니다. 수도 암스테르담과 상업 도시 로테르담, 풍차 도시 잔세스칸스, 로열 델프트 도자기의 탄생지 델프트, 그리고 이준 열사의 기념관이 있는 헤이그까지 짧은 기간 여러 도시를 둘러보며 알차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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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곳이 있으신가요? 그 나라 문화의 정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챙겨서 가는 편인데, 특히 유럽에 왔다면 더욱이 빼놓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암스테르담의 뮈제임 광장에는 국립미술관반 고흐 미술관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규모만큼 많은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요. 미술관 카드를 구매해서 이틀 동안 방문해서 둘러보았어도 아쉬웠습니다. 한국에서도 특별전 전시를 종종 하지만 아무래도 소장한 작품의 규모가 다르고, 건물이 주는 느낌도 달라서 마치 그 시대의 미술책 안을 구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미술사를 잘 모르더라도 알 만한 작품이 많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종류가 다양해서 누구라도 흥미 있게 둘러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추가로 덴하그에 있는 마우리츠 왕립 미술관이 있는데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 주연으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어서 가보고 싶던 곳인데, 원래 저택으로 사용된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그런지 일반 건물보다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가 풍깁니다.


네덜란드 황금시대(Dutch Golden Age)의 풍부한 회화작품을 소장한 만큼 국립 박물관에서는 아름답고 멋진 그림을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요, 익히 들어온 작품들 외에도 풍성한 꽃이나 바다 풍경, 도시의 전경 등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렘브란트의 작품입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큰 작품 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데 '야간 순찰'과 '해부학 강의'는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크기가 커서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맞은편 건물로 가면 세계 최고의 고흐 컬렉션 반 고흐 미술관이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워낙 익숙한 작품이 많아서 기대가 많이 되었죠! 고흐 특유의 붓터치로 그려진 노오란 '해바라기'도 인상 깊은데,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나 파란 하늘이 배경인 '꽃피는 아몬드 나무'였습니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동생에게 보낸 그림에는 따뜻한 하늘색과 새하얀 꽃잎이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전시도 자주 하지만, 직접 작품을 마주할 때의 떨림은 분명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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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 둘러싸인 렘브란트<야간순찰> 그리고 반 고흐의 초상화


그야말로 미술책에 푹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많은 그림을 눈에 담았는데요. 크고 웅장한 작품도 많았지만 관람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램브란트와 고흐, 두 거장의 자화상들이었습니다. 특히 램브란트는 젊었을 때와 나이가 들었을 때 그리고 노년의 모습까지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두 거장의 자화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A4 정도의 작은 사이즈, 얼굴이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있고, 측면을 향한 얼굴과 관객을 보는 눈빛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었는데요. 본인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는 평범함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습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 거장의 자화상. 불안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몫(그림)에 최선을 다했던 화가의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고, 그것이 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작품에 담긴 인간의 노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미숙하고 지질한 현실에서도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습니다.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위대해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미술관에는 선생님과 견학을 온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앉아서 토론도 하고 의견을 발표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책만이 아니라 이렇게 현장에서 실제 그림을 보고 얘기하면서, 그림을 평가하고 예술을 정의하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평생의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직접적인 가르침이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 영감을 통해서 각자의 작품을 그려갈 수 있는 일깨움. 이것이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