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 사명
인도 1편
인도의 도시
인도로 떠난 여행은 내 삶에 도끼와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만큼 굉장히 색다르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는데요. 인도는 위험해서 절대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 ‘한 번 가봐도 좋겠다’고 선택한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라는 테마로 100여 명이 함께 이동했고, 10여 년의 경험 있는 전문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패키지였습니다. 모든 숙박은 호텔에서 하고, 한국 음식이 가능한 요리사도 동행하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괜찮겠다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시아나 항공 직항을 타고 서울에서 8시간이 걸려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한 때가 3월, 이맘때입니다. 3월 초순의 인도 날씨는 살짝 더운 정도. 해가 뜨거워 긴팔 옷으로 피부를 가려야 하는 정도입니다. 보통 4월부터 9월까지는 그마저도 뜨거워서 한국 여행사에서도 단체 관광은 피하는 달이라고 합니다.
도착한 첫날은 공항 근처 비즈니스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의 대표 도시라고 하면 수도인 델리, 발리우드의 중심지인 뭄바이, 영국 식민지 시대의 수도였던 캘커타(현 콜카타), 인도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벵갈루루 등이 있지만 성지순례 코스는 이곳들보다 더 시골로 이동합니다. 럭나우, 쉬라바스티, 쿠시나가르 등 이름도 낯선 곳들인데요. 지도에서 보면 인도의 서쪽에서 동쪽을 가로지르는 루트입니다.
인도의 도시들
그나마 유명한 곳이라면 바라나시였는데요, 여기에는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갠지스강이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도시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갠지스강의 이미지는 굉장히 따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곳에는 화장터가 있고 시체를 태우 기고해서 음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요. 햇빛에 비치는 반짝이는 잔물결과 드넓은 강이 주는 이미지가 굉장히 포근해서 사실 놀라웠습니다. 여기서 소형 보트를 타는 게 코스 중 하나인데요, 인스타그램에도 많이 나온 것처럼 인도의 이국적인 느낌을 사진으로 잘 남길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갠지스강에는 항하사라는 모래섬이 있습니다. 보트를 타고 이곳에 내리면 낙타와 태양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경에는 '항하사의 모래만큼 많다'는 비유가 쓰이는데 , 실제로 만져보면 모래가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입자가 작고 곱습니다. 인도인들은 워낙 갠지스강을 좋아하고 신성하게 생각해서 여기의 모래를 담아서 팔기도 하고, 또 강가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위생상 저희는 최대한 물에 안 닿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다가야라는 도시는 부처님이 깨달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말만 들어도 굉장히 사람들이 많을 거 같죠. 실제로 관광객과 각종 행사들로 호텔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불교의 상징과 같은 보리수나무와 거대한 대탑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유적지인 만큼 관리가 철저합니다. 입장할 때 보안 검색대도 거쳐야 하는데 휴대폰과 신발은 밖에다 두고 가야 합니다. 신발은 그렇다 하더라고, 휴대폰을 가져갈 수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웠어요. 하지만 또 반대로 사진 찍느라 놓치는 풍경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오롯이 감상에 집중하기에 좋았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정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서양인들도 제법 많고요, 곳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꼭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누구나 인생에 답을 찾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과연 부처는 이곳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탑 주위를 돌고, 좌선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기도하고 인사도 할 수 있는 경험이었고, 영적인 신비로움이 가득한 특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쿠시나가르입니다. 이곳은 대도시도 아니고 흰색의 작은 건물이 전부인 곳입니다. 불교의 4대 성지라고 하면 보통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첫 설법을 하셨다는 사르나트,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여기,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입니다.
열반당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부다가야에 비해면 사람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부처님 와상 주변으로 10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 전부입니다. 다행히 제가 갔을 때는 공간이 비어서 실내에서 십여분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는데, 미얀마에서 온 수도사분들이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한증 깊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이역만리(異域萬里)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먼 곳 인도까지 와서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에 있다는 게 여러 생각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삶이란 모두에게 유한한데 우리는 왜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그 사람의 삶은 뭐가 달랐던 걸까’, 하는 질문도 떠올랐습니다.
열반당에서 부처의 생애를 마음으로 쫓아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부처와 같이 생을 관통하는 보물(깨달음)을 얻었다면 어땠을까? 개인적인 성취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했을 텐데, 그 보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주려는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시대를 초월한 성인들의 삶이 그래서 위대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의 행적에는 개인의 영달을 넘어선 인류애가 느껴집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은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인간이었고, 왕으로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고, 6년의 고행 끝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일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때의 어록이 지금까지 남아 종교가 되었고, 그 자신처럼 자기 안에서 신을 찾고 완성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어떤 종교든 그렇죠. 나만 잘되겠다는 편협함이 아니라 모두를 잘되게 하겠다는 자비로움이 짧은 순간 강렬하게 느껴져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한 가지, 사명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여행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물음표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만큼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 여행이었습니다. 몸은 타인의 행적을 쫓았지만, 마음은 나의 인생을 돌아 보았습니다. 성지순례는 결국 내 삶을 걷는 일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살았던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게 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현실을 살아가는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하루에 5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느리게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선택한 사명(使命)이 없다면 그 삶은 제자리 걸음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설정한 방향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제시한 기준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느리더라도, 확신이 없더라도, 나의 사명을 설정해야 합니다. 자기만의 사명을 쫒기로 한 그 순간부터 부처의 역사가 된 것처럼, 우리가 선택한 그 길을 걷기로 한 순간부터 비로소 개인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동하는 순간 내가 거쳐온 삶의 길을 짚어보려 했고, 나만의 사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의 성지순례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인도는 분명 까다롭고 위험한 곳입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끝까지 쫓아오는 막무가내 상인들과 구걸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에게 위험한 치안상태, 생수 아니면 먹기 어려운 물,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공항 수속 등 피하고 싶은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직접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여행지는, 가지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인도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그만큼 떠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