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 고독
템플스테이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푸른 하늘과 단청이 물든 처마를 올라다 보며, 커피 대신 찻잔을 들고,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를 감상하는 한가로운 풍경이 눈에 그려집니다.
대게는 많은 것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채우려고 떠나지만, 때로는 고독을 찾아 여행을 합니다. 저도 혼자가 되기 위해 템플 스테이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템플 스테이가 다른 여행과 다른 매력은 ‘비움’에 있습니다. 도시의 시끄러움, 많은 사람들, 바쁜 스케줄에서 한 발짝 물러나 대신 그 자리를 무위(無爲)로 채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와 혼자 있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디톡스 하는 기회가 됩니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 위치한 미황사에는 조금 특별한 템플스테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7박 8일 일주일간 묵언과 금식, 인터넷을 쓰지 않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금지되는 것은 3가지 - 대화, 음식, 그리고 휴대폰입니다. 이 중 한 가지도 없는 생활이 정말 가능할까? 싶을 만큼 생활에서 없어서 안될 것들인데 딱 일주일 손에서 놓아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안 그래도 조용한 산골에서 더욱 지루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산사에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터미널에서 6시간이 걸려 해남에 도착하면, 거기서 또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천년고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황사(美黃寺)는 무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는데요. 소백산맥의 끝자락 달마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찰의 중심에 부처님상이 있는 대웅보전은 오래된 세월을 대변하듯 오색단청이 다 지워진 수수한 모습이었습니다.
도착한 첫날에는 먼저 휴대폰을 수거합니다. 일주일간 주로 시간을 보낼 예정인 선방에 모두 모여서 스님께 이곳의 규칙과 생활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면, 절에서 내어주는 회색 옷(법복)으로 갈아입고 묵언이 시작됩니다. 이제부터는 대화를 대신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노트와 펜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템플스테이의 첫 프로그램은 스님을 따라 근처의 산길을 느린 걸음으로 걷습니다. 걷기의 목적은 목적지에 빨리 닿는 것이 아닙니다. 찬찬히 생각하는 걷기라는 느낌이었는데요. 일정한 보폭으로 걸으면서 가볍게 생각을 비우기 위한 워밍업이 되었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따르느라 빠른 걸음이 습관이 됐는지 앞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기가 쉽지 않았지만, 움직임의 속도를 늦추니 한 발의 내디딤을 찬찬히 살피고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템플 스테이의 시작. 절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바쁘게 돌아갑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법당에서 첫 예불을 하고, 한 시간 좌선을 한 후 아침을 먹습니다. 식사 후에는 앞마당의 텃밭에서 잡초를 뽑는 울력을 하고, 다 같이 모여서 향 좋은 녹차를 우려 마십니다. 그리도 또다시 좌선. 점심에는 각자의 발우에 음식을 덜어먹는 발우공양을 하는데 이것이 하루의 마지막 식사입니다. 오후에는 스님께 법문이나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고, 그 후에는 또 정자세로 앉아 조용히 앉는 좌선을 합니다. 저녁에는 식사 대신 가볍게 요가 운동 후 주스를 마십니다. 해가 질 때쯤엔 30분 정도 청소를 하고, 마지막 저녁 예불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생각보다 바쁜 스케줄이죠? 특히 좌선(坐禪)이라고 해서 차분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총 5시간이 넘습니다. 새벽과 오전, 오후를 주기로 '일을 삼아' 앉아서 시간을 보냅니다. 생각하기 시간이 따로 있는 셈이죠. 저는 이런 시간이 평소에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에도 수업과 휴식시간이 적절히 나뉘어 있잖아요. 일을 할때에도 더 나은 효율을 위해서라도 잠깐 내려놓고 점검하는 시간은 나 스스로라도 만들어주어야 일이 파묻히거나 지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격무에 시달리는 날이면 하루에 6시간이고 말없이 창밖을 보며 앉아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정확히는 그런 여유가 그리운 거겠죠. 템플스테이는 일부러 나에게 한가로이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이 외에도 아침 식단에 올랐던 신선한 무화과, 새벽 밤하늘을 채우던 쏟아질 듯한 별들, 다도 시간에 마시던 녹차의 그윽한 향, 넑 놓고 바라보았던 붉은 노을 풍경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일주일은 그야말로 자발적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수시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평소에 얼마나 사소한 것들에 주의를 뺏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처음엔 답답했지만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꼭 필요한 말은 노트에 써서 대화를 했는데, 막상 쓰려고 보면 굳이 생략해도 되는 내용도 많습니다. 스님께서 말하는 에너지도 아껴서 나를 살피는 데 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도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대신 내면으로는 수많은 질문과 생각이 오갔습니다.
일주일간 말을 아끼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 외에도 하나의 미션이 더 있습니다. 바로 스님이 던지는 화두인데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입니다. 사실 템플스테이의 모든 일정이 이 질문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한 환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고, 울력과 식단 조절로 몸을 가볍게 하고, 내뱉는 말을 줄여서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일주일 동안 탐구하기엔 버거운 주제입니다. 휴식 겸 왔는데 너무 어려운 숙제를 주신 게 아닌가 싶고, 단박에 떠오르는 깨달음도 없었지만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을 제대로 마주한 기회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내가 바라는 나를 찾고, 구하고, 실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노력은 꼭 필요한 수행이 아닌가 합니다.
고독은 본질은 마주하게 한다
혼자의 시간은 내면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대신 나 스스로와 수많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한가로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지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고독이라고 하면 일견 부정적인 느낌도 들지만 역사상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성장의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 가운데 자신과 대화하고, 삶을 성찰하고, 나아가 삶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7박 8일의 기간 동안 일을 손에 놓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떠올려보았는데요.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질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른 만큼 각자 자신만의 대답을 찾고 삶을 통해 실현해야 합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이 결국 고독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대사처럼, 알을 깨고 나오는 새는 홀로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 한 세계를 파괴해야 다음 세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기존의 삶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기회를 얻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가 삶에서 평생 껴안아야 할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마주하게 합니다. 사실 이것은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 불편한 질문이지만 삶의 단계마다 들여다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템플 스테이에서는 스님께서 매일 한 번씩 화두로 잘 들고 있는지 점검을 하는데요. 어느 때고 잃지 말아야 할 중심이 있다는 것을 일깨줘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고독은 본질적인 것을 마주하게 합니다.
비워야 채운다
역설적이게도 느리게 움직이고, 사색하고,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여유는, 시간을 곧 돈으로 교환하는 현대인에게 엄청난 사치이기도 합니다. 템플스테이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을 실감했는데요. 말을 삼가고, 음식을 줄이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일단 체력이 회복되었고, 체력이 올라오니 생각도 맑아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휴식이란 이렇게 비움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채워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스님께서 일상으로 돌아가 활발발한 생활을 하라고 당부하셨는데요. 고독과 휴식은 더욱 나답게, 활발히 살아가기 위한 여백을 줍니다. 템플스테이에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새롭게 충전된 에너지로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계획하는 기화가 되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의 리더들이 일부러 생각 주간을 통해 미래를 구상한다고 하죠. 고독의 시간은 내면을 성장하게 하는데요. 여러분의 혼자 시간을 어떻게 채워지고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 시간을 제대로 즐겨본 적이 있으신가요?
☞ 네이버 오디오클립 연재 중입니다 <여행과 나/혼자 떠나는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