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노트 - 행운
첫 여행의 기억
처음은 항상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살면서 수많은 처음을 겪으며 그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왠지 모를 거부감도 들지만... 막상 하고 나면 대부분 해보길 잘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당시 동생이 교환학생 중이던 일본의 작은 도시 히메지(姬路). 우선 오사카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시골마을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로 고작 2시간 거리이지만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던지요. 눈에 보이는 생경한 모습과 귀로 들리는 다른 언어에 온 몸의 세포가 긴장되었습니다. 그냥 길거리를 걷고, 표를 사고, 버스를 오르내리는 아주 사소하고 일도 새로웠습니다. 시골마을의 첫인상은 아주 고요했습니다. 깨끗한 거리에 차도 거의 없고, 자전거가 지나다니는 한가로운 장면이었습니다. 미묘하게 다른 환경 속에서 신경을 곧추세우며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낯선 감각의 향연, 이 불편하고 설레는 순간을 위해 여행을 계속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동생이 있는 대학의 기숙사에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여럿 있어서 함께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지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해외여행에서 큰 메리트! 첫 여행부터 여러 가지로 행운이 따랐습니다. 맛집 정보나 이동 경로 등 시행착오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주위의 소개로 기모노 입기나 전통 북을 연주하는 문화체험도 해 보고, 현지 사람들과도 만남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유명 관광지나 명소를 방문하는 재미와 다르게, 사람과의 대화는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한 듯했습니다.
환대의 음식으로 기억되는 소고기 전골요리, 스키야키(すき焼)
당시 히메지 대학에는 한류 드라마의 인기로 한국 대학생과 현지인의 언어교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동생의 언어 파트너인 한 아주머니께서 한국에서 가족이 왔다는 소식에 초대를 해 주셨는데요. 사실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게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중간에서 통역을 하기도 힘들고, 또 대학생 딸이 있는 부모님 뻘 어른들이라 대화가 잘 통할 지 다소 걱정도 되었습니다.
약속 당일, 작은 선물을 들고 아주머니 댁을 방문했습니다. 이동이 불편해서 차로 데리러 와 주셨고, 타국의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려고 마트에서 같이 장을 봤습니다. 본인도 한국이 궁금한 만큼 이방인들에게 일본의 모습의 소개해 주려는 마음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날의 메인 요리는 일본식 불고기 전골인 스키야키. 스시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달달한 간장소스와 고기, 야채를 끓여 먹는 스키야키가 현지인에게 더 친숙한 음식이라고 알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작한 국물에 재료를 계속 리필해서 먹을 수 있는 메뉴라서 배가 가득 찰 때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날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는데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달되는 소통이랄까요? 아주머니와 동생이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아저씨께서 집안의 물건과 사진을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주셨는데 그 의미가 대략 전달되었니다. 참 신기하죠.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듣고, 하나라도 쉽게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말을 하다 보니 언어를 넘어 대화를 이어졌습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일본인, 일본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모여 여러 시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예상치 않게 즐겁고 따뜻했던 그 만남이 종종 한국에서 스키야키를 먹을 때마다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여행에서 고생이 빠지면 왠지 섭섭하죠. 물론 모두 좋았던 일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목적지를 잘못 읽어서 잘못 내리고, 길을 잃어버려 익스큐즈미~를 수십 번 건넨 끝에 영어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찾기도 했습니다.
한국으로 온 후에도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으로 한동안 활기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이전의 일이지만 그때 처음 먹었던 낫또는 제 입맛에 딱 맞아서 지금도 즐겨 먹고 있고, 일본 가족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 만큼 언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처음이 즐거웠기에 지금도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고요한 호숫가에 잔잔하게 퍼지는 물결처럼, 그때 그 시간의 긍정적인 여운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행으로 낯설게 보기
히메지를 다니며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낯설게 보기'가 아닌가 합니다. 떠나간 장소는 처음이라 낯설고, 또 얼마 간의 공백 후에는 일상도 낯설어집니다. 생경한 곳에 있으면 긴장 때문인지 무뎌진 감각이 살아나는데요. 약간의 긴장과 예민함으로 인해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자각이 순간순간 와 닿습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기억하고 싶은 글귀가 있으면 종이 한 귀퉁이를 접어둘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행과 같이 예민한 감각으로 새겨진 기억은 우리 삶에 접힌 귀퉁이와 같습니다. 필요할 때 쉽게 열어보고 기억하고 싶은 날들입니다. 그런 페이지가 많은 삶을 살고 싶어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합니다.
누구나 언제든 그냥 훌쩍 떠나버리면 그때부터 나만의 여행기가 시작됩니다. 다른 일에서는 실수를 하면 우울하지만, 여행에서 만큼은 오히려 더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남는다는 유쾌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히메지에서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지만 요란했던 기억 덕분에 지금도 매년 새로운 기회를 꿈꿉니다.
여러분의 첫 여행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연재중입니다 ☞ <처음의 기억,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