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아, 너 어제 일 기억나? 어제 대체 왜 밖을 나간 거야? 너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던 거 아니었어?”
“나도 모르겠어. 눈을 떠보니 복도였고, 1층으로 내려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1층으로 내려갔어.”
“아니, 우리 방 호수를 알고 있잖아. 그럼 방 호수를 찾아서 와야지 1층은 왜 내려갔어?”
“나도 몰라. 복도를 계속 뛰어다니면서 엘리베이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어. 우리 방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고 그냥 1층으로 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만 계속했었어.”
“그럼 1층으로 가서 어떻게 했어?”
“1층에 갔더니 호텔 직원은 하나도 없었고, 어떤 외국인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도와 달라고 얘기했더니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그분 핸드폰으로 파파고를 열어서 내가 한국말로 이야기했더니 호텔 직원을 찾아주셨어, 그래서 카드를 엘리베이터에 대줘서 다시 15층으로 올라올 수 있었어.”
너무 무서웠다. 만약 아이가 정신을 차려봤는데 호텔 밖이었다면, 만약 길을 걸어가다 오토바이와 부딪혀 사고라도 났다면. 그러다 누가 데리고 가기라도 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두서없이 말하는 아이의 말만 듣고는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 알아야만 했다.
남편과 고민하다가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짧은 영어로 장문의 글을 써 호텔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아이의 동선에 맞는 cctv를 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일단 호텔직원도 이해는 하는 듯 보였으나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 봐야 한다는 조금은 답답한 말을 듣고는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행하는 동안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무거웠고, 딸아이 역시 밤에 잘 때마다 또다시 방 밖으로 나갈까 봐 무서워했다. 케리어 두 개를 문 앞에 펼쳐 놓고 방 안에 있는 의자로 문을 막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한 이틀 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이대로 미궁 속 사건으로 남겨둔 채, 볼 일을 본 뒤 밑을 닦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을 가진 채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빨리 로비로 내려와 cctv를 보자는 남편의 전화에 부리나케 내려갔다.
우리 방이 있었던 곳에는 cctv가 없어서 몇 시에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이의 행동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정말 아이가 몽유병이라 복도를 장시간에 걸쳐 돌아다녔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방문을 열고 나간 직후 아이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영상 속 아이의 표정에는 당혹감, 불안감이 가득했고, 불안해하며 복도를 달리는 아이의 모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의 말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한 외국인을 만났고, 도움을 청하는 모습 역시 담겨 있었다.
우리 부부가 걱정했던 것처럼 잠결에 정신을 못 차리고 돌아다닌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한 상태로 집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방 문을 열고 나가야 했던, 경험에 충실한 채로 방문을 열었던 것이었고, 호텔방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정신이 들어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만 한 듯 보였다. 당혹감에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고, 본인의 방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한 우리 기쁨이.
cctv를 몇 번씩 돌려보며 두려웠을 기쁨이의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까지 조여왔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었을까.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있는 기쁨이에게 본인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그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기쁨아, 엄마가 지금 그날 있었던 일 cctv를 보고 왔거든. 기쁨이랑 엄마가 걱정했던, 그런 증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 기쁨이가 잠결에 집에서처럼 방문을 열고 나갔고 그 순간 정신이 들었던 것 같고. 그 전날 우리가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했잖아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기쁨이가 너무 무서웠을 텐데 그래도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엄마였다면 아마 주저앉아서 엉엉 울기만 했을 텐데... 우리 기쁨이 정말 많이 컸구나.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 그냥 여행 중 생긴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하자. 또 그러면 어쩌지 라는 걱정은 이제 하지 마 기쁨아.”
아이를 안심시켜 주며 그 말에 나도 함께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나의 웃픈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낭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비 오는 날 운치 있었던 호이안 거리도 아니요, 웅장함이 느껴졌던 포토스폿인 골든브릿지도 아니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해발 1,500미터 위의 바나힐도 아니요, 내 몸에 있던 피로물질을 싹 가져간 마사지도 아닌! 딸과의 잊지 못할 첫 날 밤이 아닐까.
“엄마, 오빠랑 행복이한테는 절대 비밀이야 알았지?”
그럼 그럼, 절대 비밀이지. 그런데 기쁨이 네가 엄마에게 준 이 잊지 못할 경험을 그냥 넘기기엔 조금 아쉬워서 말이야, 엄마가 고이고이 간직할 수 있도록 잘 남겨두었어. 오빠랑 행복이는 절대 볼 수 없는 곳에 남겨놓았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