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밤 네가 한 일을 알고있다.
“엄마, 잠이 안 와 엉엉엉.”
그렇지, 쉽게 잠드면 우리 딸이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새벽 12시. 둘째 기쁨이가 잠이 안 온다고 울면서 나온다. 분명 9시에 자러 들어갔는데 세 시간 동안 뒤척인 기쁨이.
몇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다낭여행. 새벽 6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기에 오늘은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자며, 설레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채 방으로 들여보냈는데, 시작부터가 쉽지가 않다. 맑음이와 행복이는 이미 꿈나라 속을 여행 중인데,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되었던 걸까.
초3 아이들 중 누가 누가 더 예민한가 대회가 있다면 몇 번이고 대상을 거머쥘 수 있는 우리 기쁨이. 어르고 달래도 보았다가, 화도 냈다가, 결국 등을 토닥여주는 것으로 재우기 성공.
딸에게 예민함을 고스란히 물려준 나 역시 그날따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 가려움증으로 잠을 설치다 비몽사몽으로 공항으로 출발. 휴, 다섯 식구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인데, 출발부터가 쉽지가 않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따뜻한 남쪽나라는 눈이 자주 내리는 지역이 아님에도 한파와 폭설로 눈이 소복이 쌓이던 그날, 친구들과 눈싸움하며 놀아야 하는데 조금 아쉽다는 말을 남긴 채 우리는 따뜻한 나라로 날아갔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는 모든 것들이 순탄했다. 날씨도 적당히 따뜻했고, 지금이 우기 기간이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도착한 그날은 해가 쨍쨍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구름 낀 날씨에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다음날부터는 여행 내내 비가 왔지만 그 또한 나름대로 좋았다)
현지식이 입에 맞지 않아 아이들이 먹는 것에 좀 어려움을 느꼈지만 어쩌겠는가. 평소 아이들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던 나지만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싶어 걱정을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다.
늘 밤 9시 반부터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는 조급함에 빨리빨리를 외치던 날들과는 달리 늦은 시간까지 야시장 쇼핑에 ‘맑눈광*’이 되어 원하는 물건을 하나라도 더 챙기기에 바쁜 아이들. 적은 금액으로 생색낼 수 있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마음껏 지갑을 열어재꼈다.
무던한 성격의 남자 셋과 달리 예민덩어리 두 여자는 밤잠을 설친 탓에 조금은 피곤했지만 무엇이 중하리. 여행지가 주는 설렘과 행복에 그깟 피곤함 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피곤하니 오늘 밤 더 푹 잘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호텔에 입성.
더 놀다 자고 싶어를 외치는 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포근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부디 오늘 밤은 기쁨이와 나 모두 딥슬립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놀라서 눈을 떠보니 아이고, 굴러다니며 자는 너의 잠버릇이 여기서도 나오는구나. 침대 위로 다시 기어 올라가나 싶더니 다시 내려온다. 화장실을 가는가 보다 하곤 다시 눈을 감는데 철커덕 소리가 난다.
응? 화장실 문을 닫는데 저런 소리가 난다고? 화장실 문이 좀 무거웠던가? 전날 밤부터 쌓인 피곤함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띵동 띵동. 벨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보니 새벽 1시 18분.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난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식구가 다섯이라 남자 셋이 한방, 딸과 내가 한방. 이렇게 방을 나눠 쓰고 있었는데, 자다 깬 막내가 무서워서 내 방으로 건너오는 건가? 깜짝 놀라 방 문을 열어보니...
“너 어디 갔다 왔어? 맨발로 나갔다 온 거야?”
“내가 눈을 떠보니 호텔 복도였어. 카드키가 없으면 방에 들어올 수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가서 어떤 여자분한테 도움을 청했어.”
“그럼 어떻게 잠이 깨고 정신이 돌아온 거야?”
“갑자기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잠이 깼어. 그러다 둘러보니 내가 복도에 있더라고.”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너 그럼 복도를 막 돌아다닌 거야? 이 새벽에?”
이게 지금 무슨 말이지? 카드키가 없는데 왜 1층으로 내려가? 잠옷 차림에 맨발로 1층까지 내려갔었다고? 얘가 지금 잠꼬대를 하는 건가? 그럼 아까 그 철커덕 소리가 방문을 여는 소리였다는 거야? 새벽 시간에 혼자 돌아다녔다고?
생각이 꼬여 머리가 너무 복잡한데, 딸아이는 그렇게 자기가 할 말을 하고선 다시 스르르 누워 잠이 든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얘가 자다 말고 왜 돌아다닌거아?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말을 해주지 않은 채 그냥 잠들어 버린 딸을 보며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아. 혼란스럽다. 대체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혼자 그 새벽에 복도를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는 건가? 그러다 정신이 든 거고? 이 아이...몽유병인가?
*맑눈광: ‘맑은 눈의 광인’의 줄임말. 해맑은 표정과 똘망똘망한 눈을 한 사람을 일컫는 유행어,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