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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r 05. 2024

수학문제집, 너 아님 어쩔 뻔 했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너무도 듣고 싶었던 소리. 아침 8시 10분이 되자 하나씩 자기 갈 길을 떠나는 아이들의 그 뒷모습.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방을 메고 돌아 나가는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운 뒷모습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니 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두 달의 방학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방학을 앞둔 시점부터 사춘기를 맞이할까 말까 고민하던 아들. 그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그 못지않게 나에게도 부담되는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 속 찌개 같아서 불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밖으로 흘러 넘 칠 것만 같았던 아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 거센 바람과 함께 몰려오는 파도 같아서 언제라도 나를 덮칠 것만 같았던 아들의 감정. 끝이 보이지 않는 물과 불의 싸움을 두 달 동안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이러다간 부모 자식이고 뭐고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시간들이 하루하루 늘어갔고 그럴 때마다 조급함을 느꼈던 건 아들이 아니라 나였을 터.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조금씩 아들에게 눈길을 거두기 시작했고, 아들이 요청하기 전까지는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때 구원자처럼 다가와 준 것은 바로. 


수. 학. 문. 제. 집.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의 학습은 엄마표였다.(남들이 생각하는 거창한 엄마표는 물론 아니다) 학습기계를 하나씩 끼고 있기는 했으나 그 이후의 모든 관리와 계획은 엄마의 몫이었기에,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은 나와 뗄래야 뗄 수 없었고 그러다 혼자 조급해지면서 아이들과의 마찰이 생기기도 여러 번. 나도 조금씩 지쳐가는 때에 큰 아이의 사춘기까지 빼꼼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니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이제 할 만큼 했다, 더는 못 하겠다를 외치려는 순간이었는데.     

초등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학습난이도에 큰 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부터는 기존에 하던 학습기계도 안 하고 엄마 도움 없이 혼자 계획해서 알아서 공부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아들은 강한 멘붕의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하자 꼬리를 내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내가 아직은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나 반갑고 고마울줄이야. 오~아직 죽지 않았어 나의 수학실력! 어깨 뿜뿜하며 아이에게 조근조근 설명을 해 준다. 말없이 듣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왜 또 그리 짠하고, 포기하지 않고 해내려는 모습은 왜 그리 기특한 건지. 자식 앞에 부모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한껏 올라갔던 나의 어깨가 조용히 내려와 자기자리를 찾아간다.   



몇 번이고 설명을 해주어도 실수할 때마다 아이에게 모진 소리를 해 가며,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도 시골과 도시를 비교하며 아이 기죽이기 일쑤였는데, 중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에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같은 내용을 몇 번씩 설명해 주는 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끓어오르는 국수에 찬 물을 붓듯 내 속에 찬물을 들이 붓기 시작했고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동안은 다행히 큰 소리 내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들이부은 찬물의 효과인 걸까. 아들은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힘들다고 안 하겠다고 할 법도 한데 본인이 해야 하는 것들을 끝까지 해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엉덩이 힘 하나는 제대로 들었구나 싶어 대견했고 도장 깨기 하듯 본인의 학습시간의 기록을 깨 가며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학 동안 작성한 아이의 학습플래너>

아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예전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고 아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는 모습도 많아졌다. 부작용이 있다면 엄마를 너무 편하게 생각해 친구처럼 장난을 걸어온다는 것. 마치 장난꾸러기 남학생이 여학생 괴롭히듯 해서 이게 뭔가, 난 지금 이 아이와 무슨 관계인가 싶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말도 안 하고 틱틱대는 반응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어 넘어가기를 몇 차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아이에게 물어봤다.     



“맑음아, 너 요즘 엄마한테 좀 많이 함부로 하는 것 같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엄마가 편한 거야 아니면 이제 엄마가 좀 만만해진 거야?”

“엄마, 무슨 말이야~당연히 엄마가 편해서 그런 거지.”

살살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이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엄마, 희망이가 밸런타인데이라고 초콜릿을 줬어. 받았으니까 나도 다음 달에 사줘야겠지? 난 이런 거 잘 모르니까 엄마가 좀 도와줘요.”     


“엄마, 나 희망이랑 100일이야. 100일 선물 사야 하는데 뭐 사야 해? 대체 이런 선물은 왜 챙겨야 하는 거야? 아 귀찮아. 근데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는 다 해본 거니까 엄마가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여자친구와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거 보면 진짜 내가 편해지긴 한 건가? 초반에는 나에게 숨기기 급급했던 아이인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니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럽기는 하다.    

  

아이와의 관계가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을 내려놓았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학습할 때 나의 도움이 고마웠던 걸까. 공부할 때의 어렵고 힘들었던 마음들을 엄마가 조금은 이해해 준다고 느꼈던 걸까. 기특하다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건넸던 칭찬의 말이 아이의 마음 문을 열게 해 준 걸까. 학습 후에는 마음껏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아, 내 새 노트북에 게임을 깔 수 있게 해줘서 그런건가?)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아들이기에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두 달의 방학이 지옥처럼 힘들거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방학 전보다 아이와의 관계가 편해졌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뿐이다.

물론 때때로 툭툭 튀어나오는 아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곧 다가와 예전처럼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네는 아들, 그런 아이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우리 관계. 이만큼 만으로도 만족이다. 이 정도면 정말 성공적인 방학을 보낸 거 아닌가.

‘징글징글하던 방학이 끝났어! 해방이야!’가 아닌 ‘아, 무사히 잘 보냈다. 고비를 잘 넘겼구나. 너도 나도 모두 고생 많았다.’ 하는 마음으로 개학을 맞이할 수 있음이 참 좋다.    

 


세 아이 모두 학교에 가고 고요한 집. 너무 고요해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하루 종일 들여다봤던 아이들의 문제집이 아닌 내 노트북을 마주할 수 있고, 아이들의 교재가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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