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학교를 보내고 운동을 하러 다녀오고 집도 좀 치우고. 아이들이 하교한 후의 일상까지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너무도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도 마음이 뭔가 분주하고 붕 뜬 기분이다. 약간은 초조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집 안을 괜스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아이의 방에 한 번 더 들어갔다 와보기도 하고 쌓아 놓은 짐을 괜히 한 번 더 들춰보기도 하고. 내일이면 없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오늘, 아이는 집을 떠난다.
전남 지역에 사는 중2대상 아이들을 대상으로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영국과 프랑스 문화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서류평가, 시험, 면접을 통해 100명의 학생을 선별하여 문화체험뿐만 아니라 실제 영국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인데 거기에 아이가 떡 하니 합격을 했다.
작년 여름 준비를 하면서 사실 합격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정말 아주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영어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고 그렇다고 엄마표로 똑 부러지게 아이를 가르친 것도 아니다. 학습패드 하나 의지하며 스스로 공부를 한 것이 전부인 우리 아이. 이미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고 미리부터 준비하는 아이들은 영유를 다녔거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거나 국제학교에 다녀본 이력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1000명이 넘는 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 등 정말 자다가도 툭 치면 영어가 술술술 나오는 그런 아이들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합격이라니. 전교생 30명도 되지 않는 시골 학교에서 영어회화라곤 학교에 있는 원어민 선생님과의 대화가 전부인 우리 아이가, 떡하니 합격자 100명 안에 들어있는 명단을 봤을 땐,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합격했을 땐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아이가 그 안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지낼 수 있을까, 과연 내 아이가 실력으로 뽑힌 게 맞는 걸까, 괜히 보냈다가 오히려 영어에 대한 아니 학습에 대한 의욕을 잃고 오면 어쩌나 오만가지 생각과 복잡한 마음 때문에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 앞에서는 네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었던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대체 어떻게 우리 아이가 선발된 거지?
머리가 띵 했다. 그래, 선물. 아이가 받은 선물. 그거구나.
어렸을 때부터 늘 밝고 명랑했던 우리 아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누가 눈치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장남의 무게감을 느끼며 지냈던 아이. 집안일하고 있는 아빠 엄마를 보면 시키지 않아도 두 손 걷고 나서서 도와주었던 아이. 북한군이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나라 중2들 때문이라던데 우리 집 중2는 북한군이 가뿐히 넘고 들어올 정도인 아이. 작년 초 이게 사춘기인가 싶은 순간들이 있었고 폭풍처럼 올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가뿐히 지나갔고 그 뒤론 학업에 대한 자세도 생활적인 면에서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 늦은 장맛비처럼 뒤늦게 다시 올 수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14년 동안 성실하게 바르게 자라준 아이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가 합격한 것에 대한 의문이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사라졌다. 그래, 내 아이를 믿자. 지금까지 잘 자라주었고 언제나 그래왔듯 어디 가서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아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자.
순간순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대처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그러면서 아이가 성장하는 거라며 마음을 평안히 하려고 노력했다. 해외여행 관련 유튜브를 아이와 함께 보며 빠진 준비물은 없는지 체크했고 소매치기 많은 지역이기에 보안을 철저히 하기 위한 준비물은 무엇이 있는지도 함께 찾아보며 준비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했던 여행을 오늘 출발한다.
집결 시간은 새벽 2시.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전남에서 인천까지 가야 하는 시간이 있기에 100명의 학생들은 새벽 2시까지 집결지로 모여야 한다. 차 안에서 아이에게 기도를 해 주며 기억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맑음아. 우리 맑음이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맑음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너를 많이 사랑하는구나가 느껴졌거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맑음이도 그 사랑을 꼭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네"(아주 짧고 간결하다)
차로 데려다주는 그 40여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 동안 학교 체험학습으로 집을 비운 것이 전부였는데 아이와 한 달동안이나 떨어져 지내야 한다니. 그것도 비행기를 14시간이 타고 날아가야 하는 곳에 아이 혼자 보내야 한다니. 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20킬로가 넘는 케리어를 끌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네가 이렇게 잘 자라서 홀로 여행을 가는 날이 왔구나. 잘 컸네 우리 아들.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에 올라탄 아들은 엄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떠났다.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 주고 가지. 매정한 녀석 같으니. 허한 마음으로 혼자 운전을 해서 돌아오는데 괜한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아이고 이 주책맞은 아줌마야.
14시간 뒤. 정확히 집에서 나간 지 23시간 만에 카톡이 왔다. 잘 도착했다고. 반가운 애미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바쁜데 아들 녀석은 모든 질문에 ‘네’라는 단답만을 날릴 뿐이다. 착한 거랑 다정한 거는 별개구나. 그래, 중2니까, 도착했다고 연락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한 달 동안 나는 아들 녀석의 연락을 목메며 기다릴 테고 아들은 생사확인만 간간히 해주겠지. 아들을 보내고 흘렸던 눈물이 무색해진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제 더 이상 없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지내자. 나머지 두 녀석 챙기다 보면 한 달, 금방 가겠지 뭐.(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관광하며 찍은 사진 좀 보내주면 안 되냐며 아들에게 굽실굽실거리고 있는 나. 이걸 어쩌나)
아들. 생사확인을 하루에 한 번씩은 해 주면 안 되겠니? 전화해 주는 거까진 바라지도 않을게. 네가 본 그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 나도 좀 같이 보게 해 주면 안 되겠니? 엄마가 말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