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성찰일지
마음까지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어느새 내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3월. 1월은 변화된 환경에 정신을 못 차렸고 2월엔 그런 나를 다독이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3월엔 본격적으로 삶에 시동을 거는 시간이었다. 지난 2개월을 보내며 깨달았다. 나는 나를 독촉하고 보채고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갈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스트레스 역시 나의 삶의 원동력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눈 한 번 깜빡하면 하루가 흘러가버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3월이었지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조금은 뿌듯한 한 달을 보낸 기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엄마가 있기를 바랐던 아이들이 오후에도 엄마가 경제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아무래도 바뀐 환경에서 본인들의 소비활동을 위해선 엄마의 경제활동이 더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깨달았겠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이 모아진 덕분일까.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던 학원강사에 채용되었고 그렇게 투잡러가 되었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함께 나갔다가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돌아오는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기엔 체력적으로 버거움도 있다. 하지만 늘 서브의 자리에 있다가 메인의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은 나의 자존감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집에서 아이들 학습을 봐주는 모습을 보며 남편은 늘 안타까워했다.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늘 했고 그때마다 이 정도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거라며, 특별한 게 아니라고 나의 수고를 스스로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학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쉬웠던 일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모든 엄마들이 가능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쩌면 아이들 교육에 조금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나에게 엄청 큰 변화다. 남들의 칭찬을 들을 때에도 겉으로는 감사하다 말했지만 속으로는 ‘뭐야,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데 이게 칭찬들을 일인가?’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렇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추고 있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내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었던 3월. 거기다 많지 않지만 수입까지 낼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정말 큰 1석2조 아닐까.
물론 가끔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남의 자식 가르치느라 정작 내 자식 챙길 시간은 없어져 집안 꼴이 말이 아닌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한 번씩 훅 하고 올라오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아이들을 더 믿어보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올 해로 엄마와 이별한 지 20년이 되었다. 우와, 20년이라니. 엄마와의 이별의 그 순간이 바로 엊그제 같이 아직도 너무 생생한데. 이제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엄마 기일마다 찾아뵙지 못했던 납골당에 다녀왔다.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나 겨우 갈까 말까 했었는데 이제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속상해서 누군가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비록 엄마와 직접 대화할 수는 없지만 사진 속 밝게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 열 가지 중 하나가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 문화생활 하는 것이다. 영암에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문화생활을 많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연이나 전시회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차를 타고 한두 시간 나가야 하는 건 인천이나 영암이나 같지만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인 거리가 늘 있었다. 이번 달에는 영화 <왕사남>을 보러 다녀왔다. 천만 관객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가족 외출이 있을 때마다 귀찮다고 가기 싫다고 비싼 척을 하던 큰 아들도 천만 영화는 봐야 한다며 흔쾌히 함께 동행해 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슉하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영화관이 있다니.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큰아이의 영국연수의 마지막은 평가회다. 평가회까지 참석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종료된다. 짧은 한 달의 시간이었지만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은 정이 들어버렸고 대문자 T인 아들조차 그들과의 시간과 추억을 잊지 못한다며 이번 평가회까지 꼭 참석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멀리 보성까지 가야 하고 남편은 동행할 수 없는 일정이라 인천에서 전남까지 혼자 운전을 해서 가는 일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덩달아 두 아이들도 영암에 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간절한 요구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나 역시도 영암이 그리웠던 건지 오가는 길이 생각보다 고되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아이들의 친구들은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들도 반갑게 맞아주시는 걸 보며 우리가 보낸 14년의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우리가 참 잘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수도권에서 충청권을 지나고 전북을 지나며 점점 익숙한 지명이 보일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여기가 제2의 고향이 맞구나! 877킬로라는 기록적인 주행기록을 세우며 이제는 남편 없이도 어디든 가뿐히 다녀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으니 이 역시도 감사감사!
3월엔 나의 생일이 있다. 친구 한 명 없는 곳에서 맞는 생일은 다른 날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외식, 아이들이 챙겨주는 소소한 선물, 그리고 가족과 함께 촛불 부는 생일케이크. 모든 것이 다 가족과 함께였다. 시댁 친정 모두 멀리 있어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한다던가 함께 모여 축하를 하는 일은 언감생심 바랄 수 없는 일. 한 살 한 살 나이가 채워질수록 사실 생일이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 생일은 달랐다. 새로 부임한 교회의 전교인이 모여 생일축하를 해주셨다. 나의 자리는 늘 챙기는 입장이었다. 교인들의 생일을 챙기고 케이크를 사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지냈던 14년. 그러다 보니 내가 챙김을 받기보다 챙겨주는 일이 당연해졌고 나의 생일을 먼저 물어보거나 챙겨주는 교인은 집사님 한 분 말고는 없었다. 그게 서운하지도 속상하지도 않게 그냥 너무 당연한 게 되어버렸고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는 일은 무뎌졌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한 목소리로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무뎌졌던 나의 마음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사랑하는 사모님~ 생일축하합니다” 나를 사랑한단다. 내 생일을 축하한단다. 어쩌면 그냥 일반적이고 평범한 축하 노래일 뿐인데 우렁찬 목소리로 불러주는 그 노래에 내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받은 이 사랑을 이제는 더욱더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생일 축하 노래였다.
필사하는 엄마를 위해 예쁜 필기구를 준비해 준 딸,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아들의 선물. 무언가를 사고 싶은데 본인의 용돈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건 스트로뿐이었나 보다.(본인이 가지고 싶었던 것을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사 온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긴 하지만) 이번 생일은 마음이 더욱 풍요로운 생일이었다.
돌아보면 3월은 참 정신없으면서도 마음이 풍요로운 한 달이었던 것 같다. 다음 달이면 이 정신없는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이 정신없는 생활에 적응해서 더 많은 것을 해 내는 강철 체력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 어떻게 내 마음이 변하게 될지 모르겠다. 확실한 한 가지는 다음 달이 기대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내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것 같은 이 느낌, 이 기분이 참 좋다.
4월의 나의 원씽은 건강. 체력관리다. 지혜롭게 관리하여 4월에는 조금 더 긍정적이고 성장한 내 모습을 기록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