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Modern> 인상파 화가 전시에서
내가 인턴사원으로 출근하는 회사는 싱가포르 강 주변에 있다.
강을 기준으로 우리 회사가 있는 곳은 빽빽한 오피스 건물들이, 건너편에는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어 관광객들을 쉴 새 없이 볼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점심을 먹고 강가의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루틴이 생겼다. 먹는 속도가 빨라 샐러드 한 접시를 해치우고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괜히 사무실에 일찍 들어가기 아쉬워 회사 주변을 기웃거리던 게 식후 한 바퀴로 자리 잡았다.
걷다 보니 주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국회의사당과 빅토리아 여왕의 거처 등으로 쓰였던 바로크식 석재 건물들이 여전히 새하얀 자태를 반짝이며 햇살 밑에 서있다.
한쪽 눈을 자연스레 감기게 하는 따가운 햇빛 밑에서 후다닥 벗어나 무게감 있는 유리문을 밀어 졎혔다.
National Gallery of Singapore에서 여는 프랑스 인상파주의(Impressionism) 화가들 전시를 가보겠다고 다짐한 게 10월 중순이었는데 아직도 못 가본 것이 마음에 걸려 자연스레 발걸음이 갤러리 안으로 날 이끌었다. 약 두 달 전 사전 예약으로 티켓을 구매했음에도 바쁘다는 걸 핑계로 가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내 티켓 예매 내역을 보여주자 직원이 현지 대학생들은 갤러리의 모든 전시가 다 무료라고 하며 이미 구매한 티켓은 환불받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이런. 김 빠진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으로 이마에 착 붙은 앞머리를 말리며 제3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지금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 전시를 3번 다녀왔다. 기억나는 부분들만 골라 짤막한 감상을 끄적여 보겠다.
첫 번째 구간: En Plein Air (in the open air)
인상파주의 거장들의 초기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Fontainbleau 숲과 그 가장자리에 있는 Barbizon이라는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과 그곳의 서민들을 그린 풍경화가 많았다.
특히 전시장 입구 바로 맞은편에서 날 맞아주던 모네의 <Meadow at Giverny>라는 작품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전시의 마지막 구간이 모네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니, 나름의 수미상관을 고려한 듯하다.
Theodore Rousseau의 숲 속 풍경을 바라보며 나도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나무들의 피톤치드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뭇잎으로 인해 살짝 어두우면서도 무겁지 않은 평화로운 오후의 느낌을 내는 게 신기했다.
두 번째 구간: Waterscapes
숲을 지나 Trouvile, Le Havre 등 노르망디의 해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외에도 수로, 이름 모를 강가를 그린 작품들이 날 매료시켰다. 한참을 쳐다보며 이 물이 내 쪽으로 흘러오고 있는 것인지, 그림 속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잘 모르겠다.
피날레: 모네의 방
Impressionism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Waterlily와 일본식 다리를 그린 정원 그림을 본 기억은 있을 것이다.
둥근 전시장 가벽을 따라 모네의 그림들이 쭉 걸려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네 점의 육지 그림이, 왼쪽으로는 바다 그림이 네 점 있었다. 아주 잠깐 시공간이 멈췄다. 그 아름다움에 숨을 참게 됐다.
중간에 세워진 벽에는 모네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시리즈의 waterlilies 중 한 작품이 걸려 있었다. 수많은 책갈피와 책 표지에서 본 그림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동했다.
전시장에서 쓱 훑어보고는 뒤돌아서 바로 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나름의 배울 점들을 정리해 보자.
Claude Monet: 다소 짧고 두꺼운 붓터치로, 자연물에 떨어지는 빛을 따듯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들판 그림들에는 늘 몇 송이의 빨간 poppies가 등장한다. 보고 있자면 왠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고 빛의 움직임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마치 그곳에 서 있는 듯하다.
Pierre-Auguste Renoir: 부드러운 깃털과도 같은 선을 써서 foreground의 대상이 background와 접하는 부분이 마치 촘촘히 짜인 모직물 같은 기분이 든다. 휙휙, 가볍게 그은 색들이 늘어진 솜뭉치처럼 그림 속에서 흔들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Alfred Sisley: 따듯한 색감의 호수 그림이 가장 좋았다. Boudin보다 짧은 붓터치를 사용했기에 햇빛에 반짝거리는 물의 표면이 마치 한여름의 보도블록처럼 보이고, 하늘은 약간의 회색이 들어가 구름이 꿈틀거린다.
Eugene Boudin: 바다와 부두, 배를 많이 그렸다. 가로로 얇고 긴, 역동적인 붓터치로 물과 하늘을 표현했다. 거의 모든 그림에서 하늘이 캔버스 위편의 2/3를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Edgar Degas: 다른 인상파주의 화가들과 다르게 비교적 명확한 선과 형태를 지키는 깔끔한 화풍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현대인들의 일상을 그린 점이 기억난다.
Paul Cezanne: 세잔의 풍경화도 충분히 멋있었으나, 역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건 사과 정물화다. "I want to astonish Paris with an apple"이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