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보다 싱가포르가 더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
제발... 그만 좀 습해라!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약 한 달간 기숙사를 비웠더니 이불이며 옷에 죄다 곰팡이가 침투해서 싹 다 버리고 빨았던 추억이 있다.
노후된 학교 기숙사 탓이라기보다는, 싱가포르의 높은 습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1년 내내 비가 스콜(squall) 형태로 내리기 때문에 항시 습한데, 겨울 (대략 11월 - 1월)에는 특히나 더 자주 비가 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주근깨처럼 속옷에 찍혀 있는 거무튀튀한 곰팡이 점들을 벅벅 문지르면서 나는 신속하게 Purefresh Defumidifier (a.k.a. 물먹는 하마)를 Shopee 앱으로 주문해 옷장 구석과 침대 모서리, 서랍 등등에 배치했다.
1, 2학년 때는 구축 기숙사에 살았어서 곰팡이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3학년 때 운 좋게 아파트 형식의 신축 기숙사로 이사 오게 되면서 이 걱정은 덜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현재 살고 있는 신축 기숙사 방이다. 2인실을 혼자 쓰고 있다 ㅎㅎ)
하지만 방심은 금물.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 덕에 낮동안 커튼을 치지 않은 채로 방을 비우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하루 종일 넓은 캠퍼스를 누비며 여기저기 숨어 있는 강의실을 찾아다니느라 흘린 땀과 습기 먹어 몸에 쫙 붙은 청바지를 이끌고 방문을 열면 왠지 복도보다 더한 텁텁함이 확 불쾌지수를 올린다.
생각해 보니, 저학년 때 살던 예전 기숙사 방은 창문 앞에 덩굴로 뒤덮인 담이 있었기에 2년 내내 햇빛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룸메와 나는 반대 방향의 방문을 열어 프라이버시 대신 아침 햇살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인간은 무언가가 주어지면 놀랍도록 빠르게 감사함을 잊어버리지 않는가.
요즘은 방에 빛을 들이는 걸 포기하고 항시 커튼을 쳐 놓으며, 잠깐 외출할 때는 과감히 에어컨을 켜 두는 지경까지 왔다. 에어컨은 1시간에 0.38 SGD이다. 뭐, 이 정도면 켜놓는 게 가행비 (가격 대비 행복 비용) 있다고 본다.
나만 이런 뱀파이어(?) 식의 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한 학기 동안 같이 방을 쓴 베트남 친구는 오자마자 커튼을 치고선 6개월 내내 건드리지 않았다.
아, 그리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여는 건 묵언의 금기 사항이었다. 환기는 에어컨 몫이다.
싱가포르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이 나라의 질서, 편리한 교통, 해외 문화에 대한 높은 수용성 등 감탄한 점이 참 많다. 특히, 지하철도 버스도 쉽게 이용할 수 없었던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로선 소와 차도를 공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쾌적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싱가포르의 습도 적응에 완벽히 실패했다. 정말 이 날씨만큼은 도무지 좋아할 수 없다.
차라리 1년 내내 건조하다가 2개월에 걸친 몬순(monsoon) 기간에 폭우가 쏟아지는 인도의 기후가 더 낫다. 싱가포르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 1년 내내 거의 일정한 날씨가 이어지는 동남아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운 것은 상관없다. 다만, 높은 습도와 계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균일함이 나를 가끔 미치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년간 시간의 흐름을 만끽하는 데 사계절만큼 좋은 건 없다. 사시사철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인도에 있을 때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1년에 놀라워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그게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니면, 나 또한 나이 먹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