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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by 쭈야씨

2024년 7월, 평소 좋아하던 이효리 님의 새 프로그램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라는 설명이 붙은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라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이효리 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결혼 전 엄마와 단둘이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초보운전이었던 내가 겁도 없이 원거리 운전을 결심했던 2013년 4월의 어느 날, 그 여행은 결혼 전에 엄마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집을 나선 지 30분 만에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심장이 귀까지 튀어 오를 만큼 쿵쾅거렸고, 당황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고는 다행히 가볍게 마무리되었고, 상대 운전자분의 따뜻한 위로도 받았지만 엄마는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이미 예약해 둔 숙소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구겨진 차와 쿵쾅대는 마음을 안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옆자리에는 여전히 화가 난 엄마가 앉아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여수였다. 초보운전이었던 나는 한 번에 여수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광주에서 1박을 하기로 미리 계획해 두었다. 그러나 사고로 출발이 늦어졌고, 광주의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원래는 여유 있게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그런 바람은 모두 어긋났다. 막 문을 닫으려던 식당에 간신히 들어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씹고 있는 게 밥인지 모래알인지 분간도 되지 않을 만큼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엄마는 말없이 등을 돌린 채 누웠고, 나 역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의 첫날밤은 침묵 속에 흘러갔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하루였기에 다행히 일찍 잠이 들었고, 다음 날은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엄마도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여행을 즐기려는 듯했다. 광주를 떠나 여수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공주의 죽림원에 들렀다.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고, 이후 별문제 없이 여수의 펜션에 도착했다. 도착 후에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미리 찾아두었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러나 어떤 곳도 엄마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했다. 오래 고민해 정한 식당들이었지만, 엄마의 입맛에는 좀처럼 맞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날에는 비까지 내려, 우리의 여행은 아쉬움과 조용한 감정이 뒤섞인 채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이 여행이 기억의 왜곡으로 아름답게 각색되길 바라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힘들고 서툴렀던 그 여정이 언젠가 추억이 되길, 우리 둘 다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여행 이후, 엄마와는 다시 단둘이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몇 년 후,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몸의 한쪽이 마비되어 지팡이와 휠체어 없이는 걷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셨기 때문이다. 어눌한 발음으로 전화를 걸어오셨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모든 일상이 바뀌었고, 긴 재활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몸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보는 동안 엄마와 티격태격했던 일들, 다정한 말을 주고받지 못했던 어색한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효리 님과 엄마의 관계가, 그들의 여행이, 우리의 여행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싶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비록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좋은 때는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의 나에게는 그 기억들이 깊은 위로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니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많은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완벽한 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그리고 나도 이젠, 용기 내서 다시 물어볼까.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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