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인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서머싯 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
어떠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 행위에 있어 자신만의 규칙과 그에 따른 철학이 생겨난다는, 뭐 아마도 그런 얘기일 것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들, 예를 들면 커피를 끓이기 위해서 포트에 물을 채우는 행위,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 신발을 신는 행위 또는 퇴근을 하고 샤워를 하는 행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행위 등 꽤나 많은 행위들은 반복적으로 행해지며 일상의 군데군데에서 충실하게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한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부터 그들이 임무를 다 하지 않는다면 일상에는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일상은 언젠가 소리도 없이 스르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콜라를 좋아한다. 없어서 못 살 정도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콜라의 짜릿함을 찾게 된다. 밑에 이어질 이야기는 콜라에 대한 나의 철학이다.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다.
혹시 여러분은 콜라를 어느 때 즐겨 마시는가. 마신다면, 아마도 기름진 음식과 함께 마실 것이라 생각한다. 치킨, 피자, 햄버거, 파스타... 또 뭐가 있을까. 중국요리도 잘 어울리며,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콜라는 아주 잘 어울리는 음료임이 분명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음식도 많으니 그만큼 콜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
그런데 여러분들은 콜라에 대해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그것이 갖고 있는 특징에 대해서. 나는 가끔 그것에서 반복에 의한 폭력성이 보인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무시하고 계속 읽어주시길 바란다. 콜라가 건강에 해로워서 이빨을 썩게 한다거나 당뇨병을 유발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그런 면에서도 콜라를 폭력적인 음료수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콜라를 음료수보다는, 그냥 콜라, 그 자체로 말해보려 한다. 아, 브랜드라고 하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좀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COCA-COLA.
만약 지구에서 콜라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그냥 사라지는 거지, 뭐 있냐. 이렇게 말하겠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쉽게 인정하고 넘어가지 못할 것 같다. 맥도널드에 가서 빅맥을 먹을 때, 피자헛에서 피자를 시켜먹을 때, 회식을 하러 고깃집에 갈 때(차를 타서 술은 먹지 못함). 물론 콜라를 먹지 않을 수 있다. 물을 마시면 되지. 하다 못해 마실 것 아무거나 마시면 되지, 대안으로는 매실음료가 좋겠다. 하지만, 하지만 그 아쉬움은 없어질 것 같지 않다. 꼭 금연을 한 사람처럼, 음식을 먹고 나면 언젠가는 꼭 콜라를 찾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콜라 안에 들어있는 어떤 성분 때문일지, 아니면 반복적인 행위 끝에 얻어진 어떤 힘에 의해서 일지, 무엇 때문 일지 나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서머싯 몸의 면도 철학으로 콜라가 가진 반복에 의한 폭력성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의 길다면 긴 생애 동안 어떤 방식으로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내 두 눈과 두 귀와 하다 못해 코에까지 노출되었으며, 그렇게 몇 리터의, 아니 몇 백 리터의 그것이 나의 식도를 거쳐 위속에 부어졌을지. 과연 콜라가 없어졌을 때 내 일상에 조금씩 조금씩 금이 갈 것인지. 그렇게 내 일상이 스르르 무너져 갈 것인지. 이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다. 이러니 꼭 콜라가 악마의 음료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색깔마저 검디 검은 검은색인데.
그렇다면 어쩔 건데, 콜라를 끊을 거야 아니면 알고도 계속 마실 거야, 하는 문제는 저기로 제쳐두고. 나는 콜라가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보자면, 콜라가 그만큼 나의 일상과,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먹는 음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 또한, 저기로 제쳐두자. 나와 콜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손을 잡고 건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그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나는 가끔 콜라를 마셔보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가끔, 콜라만 마셔보기로 했다. 내가 이때까지 콜라만 마셔본 적은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음식과 함께 콜라를 마신다면 콜라와 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썸을 타는 중인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냥 안 마시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럼에도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콜라만 마셔보는 것. 그것으로 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혹시 무언가를 빼앗기진 않을까.
한 여름밤. 차를 타고 가다가 목이 너무 마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빨간색 자판기에서 200ml짜리 캔 콜라를 사서 단숨에 마신다. 그 짜릿함 속에서 나는 과연 콜라가 가진 그 폭력성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 여름밤의 검디 검은 어둠 속에서 자판기의 붉은빛이 말한다. COCA-C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