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주머니

by 정재원

밤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 중순, 오후 5시쯤 초롱이와 산책을 하던 나는 집 근처 공원에서 세 아주머니를 보았다. 코로나 19가 퍼진지도 수개월이 지났고 나는 3월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수업을 들었다. 1학기 때는 논문 작성과 학교 수업을 병행하고 코로나 19로 인한 새로운 생활패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지만 여름이 지나고 2학기가 돼서는 나름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평일 수업은 보통 5시에 끝났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초롱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초롱이와의 산책은 나의 규칙적인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던 중, 앞에 산책을 하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아주머니는 귀에 줄이 달린 이어폰을 꽂고 계셨다.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하시나 보다.’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뒤에서 두 명의 아주머니가 일명 ‘파워 워킹’을 하며 팔을 아래위로 힘차게 흔들고 다리를 쫙쫙 벌리며 초롱이 옆을 지나갔다. 한 분이 다른 한 분보다 눈에 뜨일 정도로 키가 컸다. 바람이 살짝 불어올 정도로 빠른 걸음걸이여서 초롱이는 흠칫 놀라 내 뒤로 숨었다. 나는 손으로 초롱이의 목줄을 잡고 있었고 눈으로는 두 아주머니의 뒤를 쫓았다. 두 아주머니는 앞서 가던 아주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서야 속도를 줄였다. 키가 큰 아주머니가 앞서가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언제 나왔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아주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키가 큰 아주머니는 다시 말을 걸었다. “어이, 언제 나왔냐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아주머니는 그제야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옆을 돌아보았다. 아주머니는 이어폰을 주섬주섬 작은 크로스백에 넣으며 말없이 허허 웃었다. 그날 보았던 세 아주머니의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그 후로 일주일 즘 지났을까, 나는 공원에서 세 아주머니를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그날과 비슷한 장면이 시작되었다. 나는 손으로 초롱이의 목줄을 잡았고 눈으로는 두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좇았다. 키가 큰 아주머니는 앞서가던 아주머니에게 몇 번 말을 건넸고 아주머니는 느릿느릿 이어폰을 빼고 옆을 돌아보았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허허 웃었다. 그때 나는 세 아주머니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초롱이를 데리고 세 아주머니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키가 큰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제는 왜 안 나왔어?” 아주머니가 대답을 했다면 아주 작은 소리로 말을 했을 것이고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키가 작은 아주머니가 그 옆에서 말했다. “그니까, 나오지 그랬어. 우리랑 얘기도 좀 하고 그러면 좋잖어.” 역시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자꾸만 아주머니께서 대답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헷갈렸던 이유는, 두 아주머니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는 누군가 말을 건네었을 때 상대방이 대답을 하지 않거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면 그에 맞게 예상되는 반응이 있었다.

1번, 왜 대답을 안 하냐고 말한다. 2번, 같은 말을 다시 한번 한다. 3번, 들리지 않으니 좀 더 크게 말해달라고 한다.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두 아주머니는 대답을 들었건 듣지 않았건 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계속해서 듣고 싶었지만 집으로 가서 초롱이에게 저녁을 주고 또 내 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 아주머니의 관계를 추정해볼 수 있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나오지 그랬어. 우리랑 얘기도 좀 하고 그러면 좋잖어.”

“……”

“그려. 나는 집에서 말 안 한 지 꽤 됐어.”

“나는 이미 따로 사는데 뭐.”

“……”


세 아주머니는 서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일까. 두 아주머니와 한 아주머니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편한 분위기가 세 아주머니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길에서 잠깐 마주친 주제에 뭘 아냐고 그런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당시에 내가 받았던 느낌은 그랬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어쩌면 말하지 않아서 서로 알 수 있는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세 아주머니 중에 한 두 분을 공원에서 본 것도 같다. 하지만 세 분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했다. 10월 중순 오후 5시에 한적한 공원을 걷는 세 아주머니의 뒷모습. 마치 가족 시트콤의 엔딩 장면 같다. 라디오헤드의 앨범 <Kid A>를 눈 감고 듣는 중에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웃음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나는 세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