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 아무도 모른다

by 정재원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웃음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웃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쌍둥이조차도 웃는 얼굴은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존재니까. 하지만 그런 미묘한 차이는 웃음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의해서 사라지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나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길 때면 두 눈은 감기고 광대는 저릿저릿 아프도록 올라가며 소리는 크게 내지 않고 웃는다. 이런 웃음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그냥 웃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사는 법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보통 '웃음'을 생각하면 어떤 얼굴이 떠오르는가. 나는 입은 살짝 벌어져있고 입꼬리가 활처럼 휘어 올라간 환하게 웃는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웃음에는 기쁜 감정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꼭 마스크를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표정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감정과 표정은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같은 길을 걸었었다. 기쁜 일이 생기면 온 세상을 밝히며 환하게 웃었고 무서운 일이 생기면 얼굴 표정을 있는 힘껏 찡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갈림길을 마주쳤고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갈림길이 언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갈림길에 대해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갈림길을 마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다들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고서는 현대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1번, 지금과 같이 모두들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하는 세상. 2번, 모두들 기쁜 일이 있으면 깔깔 거리며 소리 높여 웃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세상(어쩐지 그로테스크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과연 어떤 쪽이 좋은 세상일까. 그 중간쯤이면 괜찮은 세상일까. 흠, 잘 모르겠다. 뭐가 됐건 중요한 건 지금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그 갈림길은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잘 모르겠다. 저마다 다른 시기에 사춘기를 겪고 다른 시기에 자아를 찾아간다. 모두 다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하한선은 분명히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이들은 너무 빨리 그 갈림길을 만나서는 안된다. 세상이 그들의 순수한 웃음을 빼앗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합리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세상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가급적이면 그 때를 늦춰야 한다. 그렇게 늦춰서 조금이라도 순수한 웃음을 아이들의 입가에 남겨줘야 한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의 세상은 상식적인 곳이 아니다. 4명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12살의 아키라는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본다. 그러기 위해서 아키라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스스로 가계부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아빠들을 찾아간다. 돈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지 않으면 동생들과 함께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아키라는 먼저 택시기사인 아빠를 만나지만 허탕을 친다. 그다음에 아키라는 게임장에서 일하는 아빠(A)를 만난다. 그 둘은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저기... 아키라가 머뭇거린다.

뭘 실실 웃고 있어. A가 걸걸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저기, 엄마가 없어져서 돈이 하나도 없어요. 아키라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12살 소년의 머쓱한 웃음. 그것은 정당한 웃음이었을까. 만약 아키라가 돈을 달라고 화를 냈다거나 울며 애원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를 보는 나의 마음이 더욱 아파왔을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을 것이다. 아키라는 아직 어린애일 뿐이군 하며 조금은 안도하고 A를 욕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라는 화를 내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키라의 그 웃음 뒤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을까. 그의 웃음을 보며 나는 그의 감정이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알 수가 없었다. 화가 났을까, 슬펐을까, 울고 싶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간절했을까 혹은 무기력했을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 웃음이 향하는 대상이 영화 속의 A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화면 밖에 있는 나를 향하는 웃음이기도 했다. 나를 향하는 머쓱한 웃음. 내가 만약 A의 입장에 서서 아키라와 마주쳤다면 나 또한 A와 비슷한 표정과 말투로 아키라에게 말하고 그 작은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선심 쓰는 척을 하며 지폐 몇 장을 조그만 손에 쥐어주고 나서 급한 일도 없는데 황급히 자리를 떴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키라의 머쓱한 웃음 뒤에 숨겨진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를 본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장면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것도 방금 영화를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12살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머쓱한 웃음. 그것은 소년의 얼굴에 떠올라서는 안 되는 웃음이었다. 세상은 소년에게 그런 웃음을 짓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세상에서 소년의 순수한 웃음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했다. 세상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가슴을 한아름 안아줄 만큼 따뜻했다.

소년은 신발장에서 동생들의 운동화를 꺼내 바닥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는 밖에 나갈 생각에 기대로 가득 찬 동생들을 올려다보며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