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구한 영도 집이었기에 개가 떠나고 나자 갈 곳을 잃은 나는 영도에 돌아가지 못하고 신산리에서 1년을 방황했다.
그즈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는 애도의 기간이라 괜찮다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맥주는 4캔을 사야 저렴하니 무조건 4캔을 사는데 처음에는 그 4캔을 여러 날에 나눠마시다 나중엔 4캔도 모자라 하루에도 두세 번 사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빼곡히 술만 마셨다. 돌아보니 그 시절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개가 있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그러나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막상 그런 시간이 주어지니 개 핑계로 술만 퍼마시며 허비해 버렸고 그런 스스로가 한심했다.
사실 무슨 선택을 했더라도 나는 개를 보냄에 있어 후회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방법 따위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자유롭고 가벼워진 시간을 의미 있게 쓴다면 조금 덜 후회할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의미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할 줄 아는 것 중엔 쓰고 그리는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신산리에서의 의미 없는 시간 죽이기는 일단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 영도로 돌아가서 고민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신산리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개는 열 살을 좀 넘겼을 즈음에 큰 수술을 여러 번 했고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간 시간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해치웠는데 해치운 목록 중 하나는 제주도 여행이었다. 이별 여행이니 뭐니 나 혼자 눈물 콧물 짜가며 신파극을 찍은 것과 반대로 개는 해변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지냈고 그 이후로 5년을 넘게 더 살았다. , 사실 개는 바다에 가고 싶다 말한 적도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함께 행복했던 추억의 장소인 제주로 가야겠다는 건 그저 나의 욕심이었을 뿐 개는 장소가 어디든 그냥 함께 있는 곳이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