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뭐 해요? 시가바에서 시가 클래스

by 여행하는 술샘

와인 공부하면서 시가를 알게 되었다. 와인바에 시가를 구비해야 하니 서비스하는 법도 배웠다. 일을 위해 배운 많은 것이 내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홍정욱 <50 에세이>에서 그가 여행지에 갈 때마다 호텔 주변의 시가 바를 찾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비비도 그 대목을 읽고 언제 한번 가보자 했다.

홍정욱처럼 나도 여행 가면 시가를 즐겨봐야겠다 생각했다. 몰타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엘리에게 시가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힐튼 호텔 쪽에 있다고 했다. 몇 번을 벼르다 다녀오게 되었다.

담배를 배우러 가는 길이니 우르르 다 가자고 할 수 없어, 니나와 엘리 하고만 가기로 했다. 몰타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니 분위기를 냈다. 자라에서 산 짧은 원피스를 입었다. 머리도 뒤로 넘겨 스프레이로 고정했다. 몰타에 와서 2주가 넘도록 선크림만 겨우 바르고 지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화장도 했다. 눈에는 반짝이 섀도를 바르고, 입술도 진하게 칠했다. 가슴이 약간 파인 미니 드레스에 앵클부츠를 신었다. 민소매 드레스 위에 가죽 재킷을 걸쳤다. 제법 폼이 났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거울 샷을 찍었다.

니나에게도 챙겨온 드레스와 구두로 멋을 내고 오라고 일렀다. 내가 준비하고 집에서 걸어가는 동안 슬리에마에 사는 니나는 택시를 타고 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엘리와 베네 원장님도 테라스에 함께 앉아 있었다. 9시간 넘은 밤이었지만, 밖에 앉아도 될 만큼 날씨는 포근했다. 몰타는 벌써 봄기운이 도는 날씨였다. 재킷을 벗고 앉아 있어도 춥지 않았다. 1월에도 이런 차림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이 몰타의 매력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 칵테일을 한 잔씩 하고 있었다. 나도 모스크 뮬 한잔 시켰다. 음료 메뉴 뒤쪽에 시가 메뉴가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고르지 못하고 시가 장으로 가서 골라도 되겠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바 안쪽으로 시가 캐비닛이 있었다. 키가 큰 와인 냉장고만큼이나 큰 시가 박스였다. 짧고 얇은 프티 코로나를 찾았다. 대부분 두꺼운 로브스터 사이즈였다. 도미니카산 프티 로브스터와 쿠바산 코로나 하나를 골랐다. 테이블에 가서 기다렸다. 직원이 시가 커터, 성냥, 재떨이를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얇게 커팅을 하고 성냥을 켰다. 바람에 날려 성냥불이 몇 번이나 꺼졌다. 시가 끝에 성냥불을 천천히 돌려가며 붙였다. 동시에 담배를 짧게 여러 번 빨며 불을 붙였다. 엘리와 니나는 나에게 배운 대로 따라 했다. 엘리는 담배를 피워 본 적 있다고 했다. 로브스터를 들었다. 나는 코로나에 불을 붙여 니나에게 주었다. 시가는 입에서만 가볍게 연기를 즐기야 한다. 목으로 삼키면 안 된다. 가볍게 뻐끔거리면서 담배의 향을 즐긴다. 헤네시 브랜디도 한 잔 주문했다. 입에 닿는 부분을 코냑에 살짝 적시면 담배 향과 함께 브랜디 향이 올라온다.

내가 배운 대로, 알고 있는 대로 모두에게 실습시켜 주었다. 비비가 있었더라면 더 즐겼을 터인데, 꼭 시가 바에 가서 경험하게 해 주어야겠다.

베네 원장님은 우리를 지키는 큰오빠처럼 함께해 주었다. 내가 사려고 했으나 또 원장님께 신세 졌다. 차려입고 나온 김에 클럽도 가보자 했다.

파쳐빌 쪽으로 걸어갔다. 원장님은 우리끼리 놀다 오라며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엘리의 안내를 받으며 클럽들이 있는 골목으로 내려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11시경이었다. 클럽 네 곳 정도를 옮겨 다니며 기분을 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아들 같은 아이들이었다.

매일 클럽으로 출근하던 클럽메드 시절이 생각났다. 노는 게 일이었던 내 젊은 날은 멋졌다. 그 덕분에 이후의 삶을 즐기며 살게 되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저 분위기를 즐긴다. 이제는 클럽의 분위기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위스키 바가 더 좋다.

12시 반쯤 우리는 클럽을 빠져나왔다. 엘리와 니나는 볼트를 불러 집으로 가고 나는 걸어서 집으로 왔다. 세인트 줄리안의 중심, 바로 2~3분 거리의 집. 내가 파티 애니멀이었다면 매일 클럽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한잔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바에 앉아 한잔하며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그렇게 대화를 할까? 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만, 혼자서 한잔한 적은 한 번도 없네. 며칠 남지 않는 몰타의 밤, 그렇게 즐겨볼까? 호텔이라면, 리조트라면 한번 용기를 내보기도 할 텐데. 매일 밤 줌으로 해야 하는 12시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 괜찮지 않으까? 이미 내가 너무 나이 들었나 보다. 혼자서 나설 용기가 안 났다. 용기가 없다기보다 귀찮았다. 이미 나는 총량을 다 채웠다. 강남, 청담, 홍대에서 나의 젊은 날을 보냈다. 나의 일터가 곧 놀이터였다.

집을 떠나 낯선 동네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가 바를 검색한다. 다음 여행지의 시가 바는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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