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후회되는 일을 자세히 쓰고 느낀 점 쓰기
오늘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내 방에 있던 주제 글쓰기 공책을 펴서 보여줬다. 4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일기 쓰기가 아니라 ‘주제 글쓰기’를 시키셨다. 주제 글쓰기는 선생님이 주는 주제에 맞게 공책 한 페이지 분량으로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다. 주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꾸며낸 이야기를 쓰는 것도 있고, 실제 있었던 일을 쓰는 것도 있고, 편지글이나 시를 쓰는 것도 있었다.
주제 글쓰기를 좋아했다. 할 얘기도 없는데 써내야만 하는 일기보다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었다. 추억에 빠진 나는 오랜만에 주제 글쓰기 공책을 꺼내 훑어보았다. 눈길이 가는 글이 있었다.
주제: 가장 후회되는 일을 자세히 쓰고 느낀 점 쓰기
내게 가장 후회되는 일은... 지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후회할 일을 저지른다면 내가 저지른 일을 최대한 원상태로 되돌리려 노력하고, 그것마저 실패한다면 현실을 가장 좋게 받아들이거나 후회할 일이 참 잘 된 일으로 바뀔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에 적은 것들을 모두 실천한다면 후회로 얼룩진, 불행한 인생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난, 그래서 나는 여기 적은 것들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그러면 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 선생님 저 주제 글쓰기 하는 것 힘들어요. 손도 아프고 머릿속 아이디어 짜내는 것도 힘들어요. 주제 글쓰기 꼭 해야 하나요? ※
정정한다. 싫어했나 보다. 우스운 점은, 아래 파란 글씨로 적혀 있는 선생님의 코멘트가 이렇다는 거다.
“맞아! 후회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마지막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다. 이 답장을 받고 부풀어 있던 마음이 확 사그라들었던 것이 떠오를락 말락 하다. 선생님이 답장을 해 주셨을까? 주제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지 않았을까? 가슴이 쿵쾅거린다. 공책을 받자마자 성급한 손으로 페이지를 넘겨 가장 최근에 쓴 페이지를 찾아낸다. 답장을 보고서 실망한다.
무슨 일이든, 그게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성질인가 보다. 분명 나는 주제 글쓰기를 꽤 좋아했다고 기억하는데, 실제로 펼쳐 본 공책은 반대로 말하고 있다. 하기 싫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다. 숙제니까. 학교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학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하라는 일을 안 하면서 ‘선생님, 이건 안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안 되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싫어. 안 된다고 말하지 전에 시키는 일은 똑바로 하고 나서 그렇게 말하면 좋겠어.”
공책을 가득 채운 한 페이지를 컴퓨터로 옮기고 나니 생각 외로 분량이 많지 않다. 옛날에는 저 분량을 쓰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몇 배나 되는 분량도 한 시간 내에 쓴다. 글쓰기 근육이 길러졌나 보다.
글을 쓰는 실력도 4년(이 글자를 쓰면서도 놀랐다. 2016년이 이제 4년 전이라니! 이제 2020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자주 14살이라고 대답한다. 학교에 안 나가서 그런 거 같다. 학교에 나가면 학습지와 시험지에 이름과 학년, 반, 번호, 그리고 날짜를 쓰느라 나이와 날짜를 잊지 않을 텐데.) 이 지나면서 많이 는 것 같다.
공책의 글을 컴퓨터로 타이핑하는데 고치고 싶은 문장이 자주 보였다. ‘생각한다’ 는 표현을 줄이고 싶고, 너무 긴 문장은 반으로 자르고 싶다. 그래서, 그리고 같은 불필요한 접속사를 줄이고 나는, 내가와 같은 쓰지 않아도 아는 단어를 빼고 싶다. 대체 내 공책인데 나 말고 누가 글을 쓰겠는가!
저 때는 후회할 일이 없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지금은 후회하라면 후회할 일이 넘치도록 많다. 그러나 꼭 필요하지 않을 때는 꺼내지 않을 뿐이다. 후회와 비관에 빠져 뒤만 돌아보고 있기에는 걸어가야 할 앞길이 너무 험난하다. 집중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후회할 일이 넘치도록 많지만 후회로 얼룩진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현재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반성과 그에 따라오는 실천이 없다면, 후회는 내 시간을 좀먹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후회되는 일을 써 보라면, 글을 쓰면서 먹겠다고 라면을 끓인 일을 후회한다. 라면을 오후 11시 40분에 끓였는데 지금은 자정이다. 글 쓰면서 라면 먹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려웠다. 20분 동안 불어 버린 라면을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그릇을 내려놨다. 라면 물을 올린 20분 전의 나를 한 대 치고 싶다. 괜히 라면만 날렸다.
라면을 끓인 이유에 대해 변명하자면, 갑자기 기억이 떠올라서다. 어느 여름날, 갈아입을 옷을 학교에 챙겨와서 방과 후에 학교 옆 공원 바닥분수에서 논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수 물이 엄청나게 더럽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분수를 보자마자 마음이 바뀌어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분수에 뛰어들라고 외쳤다. 분수에 뛰어들어 몸에 물을 흠뻑 적시라고 소리 질렀다. 가장 먼저 분수로 달려갔다.
물을 끼얹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분수 물줄기로 소변 보는 척을 했다. 더위가 싹 달아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축축해진 우리는 배가 고파서인지 편의점에 들어가 먹을 걸 사 먹었다. 친구가 먹던 진라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탱글탱글한 면발, 추워서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잠재워 주는 따스한 국물... 글을 쓰고 있자니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라서 라면을 끓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가 먹던 진라면은 순한 맛이었나 보다. 너무 매웠다. 게다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맛도 아니었다. 역시 음식은 남이 먹을 때 한 입만! 하고 얻어먹는 게 제일 맛있다. 추억 보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날 분수대에서 뛰어놀던 게 너무 즐거워서, 라면이 더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으니, 배고팠던 입이 라면을 아련하고 따스한 맛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
부모님이 잘 때 몰래 라면을 끓여 먹는 일에 로망이 있었다. 몰래 먹는 라면은 어떤 맛일까? 다음에 다시 시도해야겠다. 글 쓰면서 몰래 먹는 라면은 맛있지 않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오늘 아침에 ‘침묵보다 가치 없는 말을 할 거라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다.’ 고 쓴 일을 후회한다. 침묵보다 가치 없는 말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저 글을 쓴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한 번 했다. 내 입이 제발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또 후회할 일임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한 번 더 다짐하고 싶다. 침묵보다 가치 없는 말을 하는 자를 경계하고, 내 안의 그런 사람을 경계하자. 아, 이 말은 침묵보다 가치가 있으려나? 생각 외로 침묵의 가치는 큰 것 같다.
놀라운 점은, 과거의 나는 후회할 일을 저지르면 무조건 후회로 얼룩진 불행한 인생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후회를 등에 지고 살아도 평소에는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미적지근하게 그럭저럭 살아간다. 날아갈 것만 같이 행복한 하루나 땅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괴로운 하루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가 많다. 감사해야 한다. 미적지근한 보통날을 보낼 수 있음을, 오늘도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해는 뜨고 진다는 사실을.
인생은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가볍다. 그래서 후회할 행동 하나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도 어쨌거나 해는 뜬다. 새로운 보통날이 밝았다. 오늘은 부디 후회하기보단 전진하는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