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낙하

음해하는 날들

by Anand

2년 전부터 지선이에게 없던 버릇이 생겼다. 갑자기 뒤로 벌렁 눕는 것이다. 그것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마치 베테랑 스카이 다이버, 스턴트맨 혹은 잠수부처럼 말이다. 신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이다.

다른 게 있다면, 낙하 전문가들은 정교한 훈련과 피나는 노력 끝에 '스스로' 얻은 확신인 반면, 지선이의 확신은 엄마로부터 온다. 갑자기 경기를 하면 다칠까 봐 엄마는 온 집안에 일일이 매트릭스와 라텍스, 쿠션, 배게 등 온갖 푹신한 것을 지선이 활동 반경에 모두 깔아 놓았다. 지선이가 자신의 활동 반경은 안전하다는 걸 깨닫는 데 20년이 넘게 걸렸을 뿐이다. 지선이 본인이 멍이 들고 다치는 시행착오를 겪고, 조심할 수 없으니, 지선이가 멍이 들고 피가 나는 걸 보면서 엄마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전에는 옆으로나 앞으로 슬그머니 눕긴 했어도, 뒤로 벌렁 눕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행동이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더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장난감을 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넘어지는 지선이를 보면 귀여운 것 말고도 어떤 부러운 기분이 든다.

물론 나 역시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침대를 뒤에 두고 뒤로 벌렁 눕긴 한다. 비슷하게 보여도 지선이와 내가 다른 점은 '이치'를 이해하고 하는 행동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난 이치를 이해한다. 항상 뒤로 눕는 게 안전한 게 아니고, 대부분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도 안다.

지선이는 20년 동안 그러지 않다가 '한순간', 뒤로 넘어져도 안전한 세상임을 깨달았다. 지선이에게 허락된 모든 공간, 장소에서 말이다. 어느 곳에서나 뒤로 벌렁 눕는다는 것은 엄청난 자유이자 특권이다. 그렇게 치면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긴 것도 아닌 것 같다.

문득 지선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이렇게라도 억지로 지선이라서 좋은 점을 쥐어짜 본다. 억지스러워도 가끔은 정말 납득이 되는 것도 같다. '지선이 팔자가 더 났다'

앞으로도 지선이가 계속 자유낙하만은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최소한 그런 변명거리 하나는 계속 남겨 둬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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