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by Anand

음언니도 상상이란 것을 할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음언니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상상을 많이 한다는 거다. 음언니 덕이기도 하다. 음언니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상상력은 정확한 말과 글로 소통하지 않는 음언니의 심정, 상태 등을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음언니가 어딘가 불편한 소리를 내면 어디 몸이 불편한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상상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 가족은 음언니와의 기본적인 소통을 위해서라도 상상을 해야 한다.

‘만약에 말야.’ ‘어땠을까’와 같이 유독 사랑 노래에는 가정이 많다.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우리 가족에게 있어 ‘흘러간 사랑’과 같이 아쉬운 것은 음언니다. 음언니는 지금도 훌륭하지만,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딸이자 동생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이나마 야무지게 때리는 것. 성질을 내는 것. 똘똘한 표정을 짓는 것. 을 볼 때면 많은 상상을 하게 한다. 이는 음언니의 또 다른 삶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 비교적 단순한 것. 음언니의 일과다. 부모님과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인지, 음언니에 대한 대화 주제가 별로 없다. "이번에 성적 잘 나왔대?" "쟤는 무슨 생각으로 공부를 안 하는 거야?" "친구들하고 잘 지내나?" 와 같은 흔한 이야기도 공상일 뿐이다.

"건강했으면 말이야, "

라는 말은 그 공상을 여는 말이다. 주로 엄마가 많이 쓴다. "저 독한 거 봐, 건강했으면, 전교 1등은 했을 거야", "저 목소리 큰 거 봐, 건강했으면 가수 했을 거야." "하여튼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도도한 척은... 건강했으면 친구가 없었을 거야"

이쯤 되면 음언니가 건강했으면 뭐가 됐을지 기대가 안 될 수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원하고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취를 이뤘을 것 같긴 하다. 대가나 장인 혹은 못 해도 덕후나 팬클럽 회장감은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음언니는 한 가지 장난감을 비슷한 방식으로 가지고 논다. 무한 반복이다. 질려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장난감은 낯설어하며 잘 갖고 놀지 않는다. 반면 한 번 익숙해진 장난감은 손에서 놓질 않는다. 노란 고무공. 음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언제 어디서나 공을 꼭 잡고 다니더니 결국 바람이 빠지게 되었다. 그래도 공의 형태는 남아 있었다. 그런 공이 요즘 여기저기 구멍이 나 너덜너덜한 천 조각이 돼 가고 있다. 바람이 빠진 공을 더 세게 쥐고 손가락으로 후벼 파다시피 해서 여기저기 구멍을 내놓은 것이다. 역시 질려하지 않는 걸 보면 무엇이든 눈감고도 할 만큼 반복해 성공했을 건 분명하다.

저 집념이면 뭐라도 했겠다 싶다. 나쁜 일을 하더라도 끝장을 볼 것 같은. 오빠여도 약간은 살벌한 그런 동생. 그렇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는 사막에 떨어져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친구. 이번에도 역시 '만약'으로 시작해 음언니의 또 다른 삶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소설의 얼개가 나왔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내 동생'이라는 동요의 한 구절. 내 동생의 삶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음언니를 바라보는 각자의 상상대로, 음언니에겐 '어땠을'지 모르는 수많은 삶이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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