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하는 날들
유독 안 좋은 일은 몰려서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 반대로 좋은 일이 몰려서 일어난다는 ‘샐리의 법칙’도 있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법칙’으로까지 공존하는 걸 보면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긍정적인 성향이면 샐리의 법칙이, 부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면 머피의 법칙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이 저마다의 법칙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 경우에는 머피의 법칙을 더 가까이하는 것 같다. 약간 부정적인 데다가, 화가 많아 그런 것 같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유독 화를 낼 만한 일이 자주 생긴다.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사람에겐 그냥 운이 나쁜 일이 ‘화를 내도 되는 일’로 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분은 좋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이상하게 일이 계속해서 안 풀릴 때는 그러려니라고 생각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라며 분개한다.
음언니가 경기를 해 턱이 찢어진 걸 꿰맨 후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온 가족이 어딘가 갔다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그렇듯 오는 내내 음언니는 누워서 잤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음언니 턱 쪽에 수염이 있었다. 꽤 나 굵은 수염인데, 마치 고리 모양으로 살에 박혀 있었다. 가만 보니 지난달에 꿰맨 실밥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욕이 나왔다. 1시간 넘게 기다리고 동생이 아파할까 달래고 달래서 뽑은 실밥이었다. 그보다도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안에서 곪은 건 아닌지 걱정됐다. 복잡한 생각을 마취시키려는 듯 단순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시 실밥을 뽑아주던 의사 얼굴을 떠올리고 욕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망신이라도 주고 싶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세히 살펴보니 실밥이 피부 속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피부 겉면에 검은 실뿌리가 비쳐 보였다. '이걸 뽑으면 뽑힐 것 같긴 한데, 만약 속에서 끊어지면 어떡하지. 가시 뽑을 때처럼 살을 째고 뽑아야 하나. 끊어지면 답이 없는데. 그나저나 이게 왜 아직 남아 있는 거지? 왜 발견을 못 했지?' 여러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스치는 한 장면. 음언니가 세수하고 고개를 들 적에 검은색 딱지를 본 것이었다. 그냥 그때 생긴 상처가 딱지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실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심이 섰다. 원래는 살에 딱 붙어 있었던 실이 고리 모양이 생길 정도로 헐렁해진 거면 살 깊숙이 단단히 박힌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들고 나서야 손가락으로 실을 집었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매달려 있는 강도를 알아보기 위해 살짝 당겨보려는 찰나, 차가 흔들렸다. '덜컹' '아차'할 새도 없이 내 손엔 1cm가 될까 말까 한 검은 실이 들려있었다.
허무했다. 그렇게 쑥 빠질 줄은 몰랐다. 나의 거창한 분노가 하찮아지고 스스로 부끄러운 시간은 영겁 같은 느낌이었다. 음언니이랑 연관되면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 된다. 음언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쿨쿨 잔다. 평화롭게 자는 음언니를 보니 문득 생각이 스친다 ‘정말 음언니를 위한 화였을까.’ 어쩌면 음언니는 내가 화를 내기 위한 좋은 명분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