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두고 음언니 곁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음언니를 돌보는 눈치가 많이 늘었다. 음언니가 부엌을 보면 배고프다는 거다. 화장실을 갔다가 바로 현관으로 몸을 틀면 바로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러 가자는 거다. 음언니가 살이 찌면서 가벼운 몸짓도 무게감 있게 바뀌는 바람에 그럴 때면 거의 딸려가게 된다. 급하게 할 게 있고 몸이 피곤해도 웬만하면 산책을 시켜준다.
하는 일이 없어지면 무력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런 느낌이 들 땐 음언니의 곁을 기웃거리면 된다. 시간 맞춰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주거나 산책시켜주면 뭔가 보람찬 느낌이 든다. 사람을 돌본다는 건 그 자체로 보람된 일인데, 사랑하는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뭔가 쓰이고 있다는 느낌은 텅 빈 영혼을 채워준다. 음언니에겐 미안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음언니는 아무런 일을 못 해 쓰임이 없는데, 또 그런 속성 자체가 누군가에게 보람을 주는 쓰임이 되니 아이러니하다.
큰일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일들을 하면서 느끼는 작은 성취감이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자기 효능감’이다. 음언니랑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가 좋다. 별로 크게 하는 것도 없이 쉽게 지나가는 하루라도, 음언니랑 같이 있으면 참 많은 걸 하게 된다.
음언니는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없다. 하고 싶다는 것 자체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게 있는지, 맛있는 게 많은지 모르니까. 항상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무 꽁댕이' '노란 공' '바퀴 빠진 자동차' 정도다. 먹는 건 만두, 소고기, 계란, 볶음밥 정도고, 하고 싶은 건 산책, 자동차 타기, 엘리베이터 타기 정도다. 음언니가 산책하고 싶다는 표현을 하는 게 내겐 기회가 된다.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 음언니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시간이다.
하러다. 다른 건 잘 몰라도 마트는 기억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추측건대 음언니를 봐주는 이모님과 산책할 때면 마트에 자주 가서 그걸 외운 것이겠거니 한다. 그럼 난 음언니가 하고 싶은 대로 마트로 향한다. ‘얘도 뜻대로 되는 게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내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쉽게도 음언니의 말을 들어두고 싶어도 음언니가 확실히 의사 표시하는 건 그 정도뿐이다. 그걸 다 들어주는 나는 '동생이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오빠'가 되는 거다.
음언니가 정상이었으면 만능으로 다해주는 오빠는 못 됐으리라. 우선 음언니가 정상이었으면 다른 여동생들처럼 오빠를 귀찮거나 한심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또 나도 그런 오빠가 됐을 수도 있고. 음언니가 그렇지 않은 덕분에 충분히 쓰임 받는 것에 대한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남과 달리 정상적이지 못한 음언니는 힘을 빠지게도 하지만, 더 많이 도움 되는 오빠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