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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24. 2024

나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 (포드 V 페라리)

영화 속 ‘인물’ 돋보기

  “7,000rpm 그쯤에는 모든 게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차는 무게를 잃고,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만 남는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영화는 겹겹이 덧칠된 것처럼 보인다.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또 그 내부에는 회사와 켄 마일즈 간의 갈등도 나타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마저도 알맹이를 감싸는 ‘겹’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치 처음 시작될 때 나온 셸비의 읖조림처럼,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겹’은 하나씩 모습을 감추고 본질만 남는다. 

 “나는 누구인가.”     


 영화는 켄 마일스를 따라가며 나를 깨닫는, 혹은 완성되는 과정을 그린다. 때문에 영화 제목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페라리는 보이지 않았고 별 갈등도 없다. 주요 갈등은 마케팅을 원하는 포드의 요구와 레이싱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켄 마일스 간의 갈등이다. 하지만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겹을 다 벗어낸 한 ‘개인’의 내적 갈등이다. 영화는 켄 마일스를 따라가며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레이싱 선수이면서도 생계를 위해 정비소를 운영하는 켄 마일스는 자동차에 빠져있다. 그에게 자동차는 단순히 전시용이 아니라 그 태생의 목적대로 달릴 때 의미가 있다.  


 그에게 대회니, 우승이니 하는 건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그저 빠르게 달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다. 마일스와 포드는 추구하는 본질을 다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목적은 권위 있는 대회인 ‘르망 24 우승’으로 같다.      


 마케팅이 우선인 포드는 마일스가 통제가 어렵다는 인물인 것을 파악하고 그가 레이싱에 직접 참가하는 것을 반대한다. 마일스는 그 사실을 캐롤 셸비를 통해 들어도 들어도 못 들은 척 기분 나빠하지 경기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말한다.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분해하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와 경주에만 몰입한 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다음에 결국 마일스는 데이토나 경기를 우승하고서야 르망에 출전하게 된다.

 그에게 우승은 가장 빠르게 달리다 보면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회사는 선두를 달리는 그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한다. 포드 3대가 1, 2, 3위로 나란히 들어오는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에서다. 마일스는 포드의 직원도 아니었고, 그 요구를 물리친다고 해서 따라오는 큰 불이익은 없어 보였다. 또 영화 내내 드러난 속도에 대한 그의 열망은 무엇보다 커 보였기에 그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는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좀 더 뒤에서 출발한 다른 선수에게 우승을 빼앗기게 된다. 영화는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떤 반전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완성이었다. 자신 속에 갇힌 게 아니라 밖으로 빠져나온 켄 마일스이며 한 개인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 근거는 한 대사에 있다. 켄 마일스가 시험 운전을 하다가 충돌해 불이 붙은 차에서 나오자, 동료는 켄 마일스의 아들에게 “차에서만 나오면 괜찮아”하고 말하자, 아들은 “아빠는 나왔어요”라고 답한다.          




 빠르게 달리는 것을 마치 종교와 같이 믿고 헌신했던 마일스다. 그런 그가 기록을 늦추면서까지 회사 마케팅 논리에 맞춘 건 자신의 안위나 강압에 의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 자신의 판단으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이 갇혀 살았던 자신과 동일시되던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라는 문을 열고 나왔다.


 끊임없이 속도를 높이고 기록을 높이고, 또 한계에 닥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영화 내내 마일스가 보여준 모습도 그랬다. 무시당해도, 목숨이 위태로워도 그는 속도를 추구하는 외골수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가운데, 회사에 눈치를 보는 중역도 아니고, 대회라는 특성상 운전자 재량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우선으로 여기는 가치에서 나올 수 있는 점에서 그는 타인과 대회 우승보다 넘기 힘든 자신을 넘었다.


 ‘7,000rpm, 모든 게 희미해지는 순간’, 그쯤 나타나는 물음에서 켄 마일스는 그 안에서 나와 비로소 자신을 정확하게 보고 또 완성했다.      


 초반에 나오는 캐롤 셸비의 목소리로 나온 영화 전체 맥락을 관통하는 선언이 다시 등장한다. 켄 마일즈가 사고로 목숨을 잃을 때다. 켄 마일스는 그 자동차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진작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런 자신에게서 잠시 빠져나와 스스로를 관조하며 반대되는 가치를 받아들였다. 자신에게서 빠져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고에서 그는 죽었을지 몰라도 밖으로 나온 그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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