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by Anand

A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두서없이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7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할 때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이든 말문을 열 때면 이목을 집중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로 A는 말할 때면 입버릇처럼 ‘뭔가’를 앞에 붙였다. 거의 모든 말을 시작하기 전에 뭔가라고 하는 걸 보면 사실은 ‘뭔가’라는 말이 본질적인 내용이고 그 뒤의 내용은 형식적으로 붙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A와 한참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면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뭔가’였다.


‘뭔가’라는 말에 뒤 내용을 붙이는 별 의미는 없어 보였다. 말할 게 떠오르면 ‘뭔가’라고 한 다음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다가 일단 ‘뭔가’를 뱉어 놓고 그제야 무엇을 말할지 고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음’이나 ‘글쎄’처럼 단지 생각할 시간을 버는 말일 수도 있겠다.


A의 ‘뭔가’를 들을 때면 뭔가 기분이 좋았다. ‘뭔가’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모르는 사실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정해지지 않은 것을 지칭하는 뭔가를 설명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지만, 그 뭔가가 뭐길래 기분을 좋게 하는지 궁금했다.


A의 뭔가는 뭔가 특별하긴 했다. 뭔가로 말을 시작하고 나서 내 눈을 보았다. 그 뭔가가 뭔지 생각한다고 하면 보통 위를 본다거나 상대를 본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 말하고자 하는 맴도는 뭔가를 포착하느라 눈의 초점이 흐려지기 마련인데, A는 그 반대였다. ‘뭔가’라고 말하고 나서 그 뭔가가 내 머릿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깊은 곳을 바라봤다.


A가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의 ‘뭔가’는 말을 잘 못하는 내가 한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말할 때 시작하는 뭔가가 많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면 A는 “뭔가, 그런 거 같아요” 하고 꼭 맞장구를 쳤다. 그럴 때 뭔가는 아주 강한 긍정의 말은 아니었다. 들은 말에 대해 우선 생각을 해보고, 그때 역시 내 어떤 깊은 어딘가를 보고는 말했다. 그때 A의 뭔가는 당장에라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박수는 아니었지만 묘한 울림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A의 ‘뭔가’를 들으면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이 놓였다.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닌 이상, A가 ‘뭔가’로 말문을 여는 순간 A와 교감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앞어서다. A와 나눈 말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희미하지만 뭔가 좋았던 느낌은 명확한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A의 말 가운데 뭔가만 기억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뭔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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