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한때
턱걸이나 딥스 푸쉬업 스쿼트 같은 맨몸운동이 취미다. 산스장이나 놀이터에 흔히 있는 철봉이나 평행봉, 바닥을 활용한 운동이다. 보통 철봉을 한다고 하면 산책이나 등산을 하다가 눈에 보이면 10분 정도 턱걸이나 딥스를 하기도 해 취미라고 말하기도 괜히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행동을 조금 쉬었다가 하다가를 반복하며 하루에 1시간 이상은 매달려 있어 다른 꾸준한 활동을 할 시간이나 힘도 없다 보니, 제1의 취미가 되어 있다.
철봉과 평행봉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거주지나 주요 동선에 따라 운동을 하는 곳이 바뀐다. 올해부터 사무실 위치가 바뀌면서 사무실 바로 앞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서 주로 하게 됐다. 40년 정도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다. 내가 운동을 하고 있으면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를 빙빙 돈다. 어느 어르신이라고 할 것 없이 인사를 하기만 하면, “밥은 먹었어?” 우리 할머니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그 또래 어르신들은 만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고 항상 밥은 먹었는지 챙겨준다. “운동하고 먹으려고요” 매번 이렇게 대답해도 때마다 밥 안부를 묻는다.
그날도 매달려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간혹 무심코 지켜보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중에는 몇 개나 하는지 세는 사람이 있다. 그 시선이 느껴질 땐 가만히 서서 꽤 오랫동안 보는 게 몇 개하는지 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운동을 거의 다해서 힘들었지만, 시선을 의식해 남은 힘을 짜내서 20개를 하고 내려왔다. “오 잘하네 나도 예전엔 10개는 했어.” 한 아저씨가 턱걸이를 하고 내려온 나를 보고는 말했다. “네 그러시죠” 하고 어색하게 그분의 말에 대답했다. 더 물으면 할 말은 많았다. 5년 정도 했고, 처음에는 쇄골 인대를 다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늘었고, 맨몸운동 모임에도 나가고 있으며, 지금은 이렇다 할 발전은 없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상태다. 라는 맨몸운동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었는지, 말과 혼잣말 사이의 말을 남기고서는 자리를 떴다.
“왕년에~” 같은 느낌의 말을 들었던 적은 또 있다. 역시 제1의 취미 활동을 하고 있던 때였다. 운동을 하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내가 타고 온 자전거를 보고 한 아저씨가 “나도 젊었을 때 2년은 탔어”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20년간 타왔지만, 취미라기보다는 이동 수단으로 타온 나로서는 딱히 뭐라고 대꾸할 만한 경험이 없었다. 철봉 하는 곳도 걸어서 5분 거리지만, 3분 만에 오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거다. 그 아저씨의 말은 분명 본격적인 취미로 2년을 탔다는 이야기 같았는데, 특별히 알만한 장거리 자전거 코스를 타본 적도 없고, 그저 운동 겸 교통비 좀 아끼려고 버스 10정거장 정도를 타고 다니다가, 단지 15분 이상 걷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되다 보니 15년 정도 타게 됐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우연히 중고 거래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취미로 탈 거 있어 보이는 조금 전문적으로 보이는 자전거를 사게 되어 그런 오해를 받을 뿐이라는 말도. 이제는 그런 ‘왕년의’류의 말은 굳이 내게 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다.
워낙 관행적인 말이라 처음에는 별생각이 들지 않다가 문득 아저씨들이 그 말을 할 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보는 듯하지만, 내 뒤쪽 어딘가 멀리 보는 듯한 눈빛. 공간이 아니라 시간 너머를 더듬는 듯한 미간. 내게 말했다기보단 한 때가 된 희미한 자신에게 건네는 말. 특별한 매개가 된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ㅜ초 전까지 서로 몰랐던 그들의 과거와 지금의 내가 연결된 느낌.
그렇게들 얽혀있어서인가 싶었다. 다정한 연인들을 보며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이유. 해맑은 아이를 보면 왜인지 맑고 투명한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
고독하게 느껴질 때면 어딘가 연결되어 있을 너와 나의 한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