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같네

by Anand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설 때였다. 많이 사진 않았다, 감자 한 봉지, 양파, 당근, 귤 한 박스. 고기 한 덩이 정도. 하지만 다 무게가 나가는 것들뿐이라. 꽤 무게가 나갔다. 귤만 가방에 넣고 박스를 버리고 가려고 출입구에 있던 참이었다.


“지임꾼 같네” 라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이지 하고 돌아봤다’ 적어도 70대는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있었다. 다시 “짐꾼 같아”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그 말이 제대로 들렸다. 그 말은 노부부의 아내가 하는 말이었고 아이를 앞으로 안아 들듯 모은 두 팔에는 10킬로짜리 쌀이 들려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고, 상황을 파악한 뒤에도 몇 번을 더 돌아보게 됐다. 처음엔 인기척이 느껴졌고, 어떤 말소리가 들리다 보니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을 뿐이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면, 다시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계속 보는 경우는 그 사람이 어딘가 특별할 때다. 70대 여성에게 붙는 짐꾼이라는 수식어가 그랬고, 자신을 짐꾼이라고 수식한 사람의 표정이 그랬다.

‘짐꾼’하면 언뜻 건장한 젊은 남성이 떠오른다. 금방 떠오른 건장한 남성을 조금 더 살펴본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고 표정은 고된 노동에 무표정하거나 표정이라곤 어딘가 억지스럽게 보이는 옅은 웃음이 전부다. 사실 전문 짐꾼을 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짐을 든 사람들의 이미지와 내가 짐을 들었을 때 표정이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표정이 떠올랐을 거다.


계속해서 그 노부부의 아내를 돌아본 까닭은 ‘짐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반대였기 때문이다. 건장한 사내도 아니었고, 힘든 표정도 아니었다. 건장하지 못한 여린 몸의 여성이 짐을 들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내가 떠올린 짐꾼의 모습과 정확히 반대였다. 처음에 자신을 지칭하는 “짐꾼 같네” 역시 웃으면서 말해서 잘 안 들렸던 거였다. 밝은 표정 때문인지 쌀 포대를 든 모습이 곧고 탄탄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혹시 립싱크인가, 아니면 쌀 포대 봉지만 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기이한 풍경이었다.


짐이 무거워 보이느냐 가벼워 보이느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짐이 실제 무거운지 가벼운지가 중요한 줄 알았다. 아니면 힘을 길러서 같은 무게라도 그걸 가볍게 드는지 무겁게 드는지가 중요한 줄 알았다. 짐을 드는 행위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이 짐을 드는 기계 같은 거라서 짐을 효율적으로, 다치지 않게 드는 게 목적이라면.


우연히 마주친 짐꾼처럼 보이지 않는, 자칭 짐꾼을 보고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한 것을 넘어서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짐을 계속해서 들게 될 수 있을지언정 짐을 들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다. 짐이 가벼운지 무거운지. 가볍거나 무겁게 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짐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무거워서 죽겠는데 힘이 충분한 척하는 눈속임이나 허세를 말하는 건 아니다. 온 힘을 다해서 들고 있어야 할 정도로 무겁지만, 다른 유쾌한 것들이 피로감을 지배하게끔 하는 태도다. 들고 있는 짐이 정말 무거운 게 맞는지 사람들이 계속 돌아보게 하는 표정, 짐의 무게가 얼마가 되었든, 그 짐을 들 수 있든 없든 그 짐꾼은 개의치 않고 웃는다. 손에 들린 짐이 더 이상 짐이 아니게끔.


매거진의 이전글'귀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