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 스스로에게만 들리는 말들이 있다. 기분이 갑자기 상했을 때 나타나는 비속어나, 자신만의 주문 같은 말들. 또 무의식적으로 드는 생각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들도 그렇다. 지금껏 내 일상을 관찰하면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귀찮네’ 다. 이 말은 꽤 영향력이 있다. 마음속으로 비속어나 기분을 나타내는 말은 기분과 표정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어떤 행동을 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기분이 나빠도 해야할 게 있고 안 해야 할 게 있으니까.
하지만 ‘귀찮네’는 행동을 하냐마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귀찮은 생각이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 자체가 곧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통 귀찮음을 느끼면 하지 않게 되고, 하지 않는 건 게으름을 연상시켜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귀찮네’ 라는 말이 떠오를 때면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귀찮다는 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끔 해주거나 혹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탐지자다.
맞다. 귀찮아 해서 이렇게 됐다. 시험 공부를 귀찮아 하다가 적당한 점수를 받게 되고, 어떤 분야에 대해 과한 관심을 갖는 걸 (이것 역시 공부의 일종이지만) 귀찮아 하다 뭐든 적당히만 알고 적당히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있다. 돈은 많으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쪽을 알아보고 공부하기엔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벌고 차라리 적당한 씀씀이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귀찮아하다 보니 그냥저냥 지금의 평범하고 적당한 내가 되어 있다. 뭔가 귀찮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귀찮은 마음이 드는 건 어떤 다른 욕구나 마음이 드는 것 보다 통제하기 힘든 것이라는 걸 인정하다 보니, 결국 한 사람의 정체는 귀찮음이 좌지우지 하는 건 아닐까 한다.
귀찮아서 좋았던 것들도 있다. 난 담배를 가끔 피웠었다. 술을 마실 때나 뭔가 이완이 필요할 때면 피웠는데, 정기적인 흡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담배를 피우는 게 꽤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담배와 라이터를 가지고 다녀야 하고 또 떨어지면 사야 하고, 또 때 마다 나가야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일이다. 때마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안 피우게 됐다. 간식의 경우도 그렇다, 간식이랑 과자 이런 걸 엄청 좋아한다. 한번 뜯으면 남겨 두었다가 먹는 법이 없고, 간식이 많이 있으면 많은 만큼 계속 먹게 된다. 근데 막상 사러 가기가 귀찮다보니,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는다. 먹는 것도 그렇다. 식탐이 좀 있는 편인데, 막상 뭘 먹을지 생각하고 그걸 구매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귀찮다. 덕분에 흡연도 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 건강이나 체형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귀찮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들도 있다. 밖에 나가서 자전거를 탄다거나, 철봉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좋아하는 코미디 공연을 가는 건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언제 들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그런 행동에도 필요한 물품을 사고 장소를 알아보고 약속을 하는 등 과정이 많겠지만, 그 일련의 과정에 귀찮다라는 느낌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미 있던 어떤 운명적인 부분이라서 떼어 낼 수 없는 것들처럼.
누군가는 반대로 흡연이나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을지 모른다. 또 그보다 무수히 많았을 귀찮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들이 그 사람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귀찮다라는 느낌은 어떤 행동이 있기 전에 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반동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이 이뤄지는 동력이 된다. 귀찮음은 힘 빠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