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
평소 영화 관람 전 대략의 검색 과정을 거치면서 볼까 말까를 정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였다는 말에 솔깃해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보기로 했다
2011년 개봉한 후 올해 재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이다
첫 장면
폭격으로 인해 시멘트 윤곽만 남은 건물,
여러 명의 헐벗은 소년들이 모여있고
총을 든 무장한 군인이 서있다
자신의 머리를 깎는 바리깡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소년의 눈빛은 살기와 슬픔이 서려있다
머리를 깎이는 소년의 눈빛을 비추던 앵글은 발뒤꿈치를 스친다.
캐나다 대학에서 수학 조교로 공부하는 잔느는 임종한 엄마가 남긴 유언에 따라 레바논으로 떠난다
거기서 엄마가 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아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유언장 내용을 본 쌍둥이 남동생 시몬은
엄마는 마지막까지 미친 행동을 한다고 분노한다
종교와 전쟁이 짜놓은 바둑판 위에서 누군가가 정한 각본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나왈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바둑판 위 돌이 아닌
기사가 되어 평화와 구원의 행보를 내딛는다
난민인 남자를 사랑한 나왈은 가족에 의해 연인을 잃고
아이를 낳았지만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자리를 잡으면 아이를 찾으라던 할머니는
갓난쟁이 아가 뒤꿈치에
세 개의 자국을 만든다
나왈은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딸과 함께 간 수영장 풀에서 고개를 드니 그가 있다
그의 발 뒤꿈치에 세 개의 점이 보인다......
그는 레바논에서 캐나다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은 레바논 역사의 오랜 내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소개한 사람은 절대 검색하지 말라며 반전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를 개봉 당시 본 딸아이 역시 평소 같으면 이러쿵저러쿵 스포 할 텐데
입을 꾹 닫는다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음을 인정한다
"1더하기 1은 2가 아니다"
잔느와 시몬의 엄마 나왈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아니다 잘못한 게 있다
고아원에 맡긴 아들을 찾아 나선 나왈이 탄 버스가 기독교 민병대에게
총격을 받을 때 자신의 딸이라고 우겨서 데리고 나온 아이가
불타는 버스에 남아있던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걸 막지 못했다
어렵게 찾아낸 고아원이 불타버리고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그녀는
불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변신한다
나왈의 아들이 있던 고아원을 폭파하고 버스에 총질을 자행한 기독교민병대 보스의 집이다
보스를 향해 총질을 하고 감옥에 갇혀 참혹한 고문을 당한다
고문에 시달리는 죄수 아닌 죄수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듣던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불렀던 그 노래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는 일말의 위로가 되었고
감옥에 가둔 이들에게는 저항의 의미가 되었다
나왈은 '노래하는 72번'이었다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자행한 고문기술자는 방을 나서며
"노래를 계속해......"
그는 저항의 의미가 된 노래를 왜 계속하라고 했을까
이 의문은 영화 말미에 드러난다
나왈은 민병대 보스를 살해했고
나왈의 아들의 15년에 걸친 내전에서 비밀병기가 되었다
이것이 그들의 유죄라면 유죄이고
반전 결말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감독은 종교와 이념에 의해 자행되는 '화염(Incendies)'의 잔혹함을 담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알 수 없는 폭력은
잔느와 시몬에게 1 더하기 1은 1이라는 감내하긴 힘든 현실을 보여주고 만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상의 전쟁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화염의 끝은 어딜까
소름 돋는 결말 앞에서 떠오르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