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으로부터 커브
요새 다시 뜨겁게 읽히는 책이라 수서목록에 넣었고
입고된 후 내 차례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1992년 출간되어
2019년 3판을 찍더니
2024년 46쇄를 찍었다.
주인공은 강민주
조연은 백승하, 그리고 남기
그녀는 가족에게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전화를 받아주는 여성문제상담소 봉사자이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20대 후반 여성 강민주는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을 실행한다
납치다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한 편의 영화 같은 부러운 삶을 영위하는
배우 '백승하'를 납치했다
엄마가 남겨준 막대한 유산으로 아파트를 구입하여
커다란 방에 방음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불편함 없이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
그 방에 백승하를 집어넣고 문을 잠갔다
불행하게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부드럽고 품위 있게 말하는 매력이 넘치고
눈가 주름을 얹어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는 미소가
강민주의 차가운 심장을 녹게 만드는 변수가 될 줄이야
'백승하'는
상담소 전화로 만났던 수많은 여성들의 몰염치하고 폭력적인 이기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아버지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 다른 남자와 도망간 엄마를
미워하기보다는 내내 그리워하며 기다렸다
다른 프로필은 다 바꿔도 '동두천'이란 고향 표시를 바꾸지 않은 것도
혹시나 엄마가 찾아올까 봐
미군에게 밤새 맞아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던 '노랑이 아줌마'가 걱정되어
아침마다 그녀 집을 서성거리던 '백승하'
그 남자의 과거 그리고 오히려 자신을 염려하는 남자 때문에 그녀의 계획은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차갑게 이성적인 강민주의 변화를 눈치챈
충복 '남기'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질투를 감추지만 강민주는
"나를 사랑하지 마"
여기서 강민주는 커브를 튼다
납치한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이해하고 다독이는 게 아닌가
그는 배우로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고
지나간 명작들을 감상하고 연극 대본을 읽으며 자신이 갖혀있다는 생각마저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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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커브를 틀고는 브레이크를 상실한듯 질주한다
심리학을 공부한 강민주의 계획 속에는 없었던 결말
인간에 대한 혐오와 복수는 폭력과 돈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진심이 맞닿은 배려와 공감에 의해 인간에 마침표를 찍기도 한다
내게 금지된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물음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