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동네 산부인과의 의사는 수술을 해서 혹을 떼어내야 한다고 했다. 때는 2020년이다.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국의 의사들은 환자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진찰료가 비싼 만큼 한 사람당 최소 20분 이상을 할애하여 상담을 했다. 나는 나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수술을 해서 떼어내고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다녀오기에는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2주 격리는 물론, 아무나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시기였다. 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수술과 회복,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오려면 최소 한 달 반 이상의 시간이 걸릴 판이었다. 또 병원이나 갈 수 있을지, 바로 수술 스케줄을 잡 을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했다. 결국 미국에서 해결해야 할 상황인데, 그러면 아이들은 어떡할지… 아무리 고등학생이라 해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수험생들인데, 며칠만 서로 고생하면 괜찮아질까? 다행인 것은 큰 아이가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이곳 미국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론을 냈다.
나는 수술 스케줄을 잡았고, 비용과 보험 커버에 대해 체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개인 병원 의사가 큰 병원 수술실을 사용할 때, 수술실 사용 비용, 마취과 의사 비용 등등의 비용도 모두 따로 청구한다. 이 병원 수술실과 마취과 의사가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으로 비용 부담이 가능한 지 알아봐야 했다. 내가 방문했던 개인 병원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내 보험으로 모두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병원 시설 이용은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으로 그 비용이 커버되는 듯했다. 왜냐하면 병원에 있는 시설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취과 의사는 그날 근무하는 의사에 따라 내 보험의 적용 유무가 정해진다. 따라서 근무하는 의사가 내가 가진 회사의 보험을 받지 않는 경우, 수술 비용은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그런데 비용 청구서는 수술 후 모든 비용 계산이 끝난 후 하나하나 보내지기 때문에 정확한 청구서는 나중에야 받게 되고, 그때는 돌이키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수술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체크해 놓는 것이 좋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응급 수술이 아닌 수술들은 모두 잠정적으로 정지된다는 발표가 났다. 나도 내 몸 상태가 심각했던 것도 아니기에 수술을 연기하고, 잠시 상황을 두고 보았다.
2달 후, 다시 병원의 업무가 복구되면서 수술도 재개한다고 발표가 났다. 그런데 그 사이 나의 몸에 변화가 있었다. 생리를 하면서 혹이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물론 심정적인 느낌뿐이었지만 확연히 달라지게 가벼워진 나의 몸으로 인해 나는 수술이 꼭 필요할지 수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나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고,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진짜 혹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혹은 그 자리에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수술실 예약을 마쳤으며, 자신을 도와줄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도 찾아놓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찝찝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수술을 일정대로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는 간호사께 연락을 해서 그 간의 이야기를 한 후 상담을 했다. 그분은 초음파를 해 보았냐고 물었다. 그 개인병원에는 초음파실이 없어서 수술 전 검사가 부실했다. 간호사님은 조심스럽게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너무 의사의 진료와 지시에 의해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 검사를 비롯한 수술 전 검사도 부족한 듯했다. 다른 의사를 만나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모든 수술 계획을 취소했다. 수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한 취소라 심정적으로 그 산부인과 의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산부인과에서 나를 환자 리스트에서 빼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살면서 병원에서 먼저 환자 리스트에서 빼겠다는 통보는 처음 받아봤다. 환자의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환자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으므로 뭔가 억울한 심정도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미안했던 부분도 있었기에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단지 병원에서 환자에게 이런 통보를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후 병원 마케팅으로 보내오는 안내 이메일은 또 모두 받았으니, 환자 리스트에서는 없앴지만 이메일 리스트에서는 빼지 않았나 보다. 참 이상했다. 여하튼 앞으로 그 병원은 다시 못 가게 되었으니 다른 병원과 의사를 찾아야 했다.
새로운 병원과 의사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웹에서 보이는 의사 정보만으로, 그 의사가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리뷰만을 보고 의사를 찾아내야 하는데, 며칠 동안 찾으면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른 의사를 만나면 다시 처음부터 나의 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산부인과 진료이기에 여자 의사를 우선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리스트 중에 남자 의사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코리안 아메리칸 의사가 있었다. 이 의사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병원까지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였다. 좀 먼 거리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의사가 필요하다.
예약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예상대로 그는 한국인 이민 2세였다. 한국어는 인사말밖에 하지 못했다. 나는 그간의 진료 스토리를 죽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호히 덧붙였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하겠다. 지금 수술하지 않겠다. 그러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게 해 달라. 그는 심각하게 한참 동안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일단 부위를 살펴보자고 했다.
잠시 후, 그는 혹을 떼어냈다. 미국 의사들은 대체로 시술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진료 후 다시 시술 예약을 잡아 준비를 한 후 시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첫 진료일인 그날, 바로 시술을 감행했다. 마취 없이 할 건데 괜찮겠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는 혹을 떼어낸 후 이 정도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는 거냐며 수술할 정도의 크기가 아닌데 이상하다고 했다. 이렇게 간단히 끝날 것이었는데, 하마터면 병원 수술실을 잡아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뻔했다.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사는 나를 마치 자신의 어머니 케어하듯 말했다. 유방암 검사 한 지 얼마나 되었냐?, 시술을 했지만 혹시 모르니 자궁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한다. 주소가 어디냐, 내가 예약해주겠다… 하며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예약해주었다.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 굳이 다시 여기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말 같은 병명에 하늘과 땅만큼 다른 의사의 대응이었다. 전에 상담했던 간호사님과 통화하며 이 이야기를 하니, 그 간호사님도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의사를 내가 만난 거라고 했다.
이후 나는 초음파 검사와, 유방암 검사도 하느라 2번의 다른 병원을 방문해야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클리닉이었기에 괜찮았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졌고, 나아졌기에 따라서 심리상태도 안정이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음성이었고, 모든 상황은 예전과 같은 평상시로 돌아왔다. 2020년 상반기 내내 나를 괴롭힌 상황이 8월이 되어서야 완전히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