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뽑기 작전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랑니가 아팠다. 어릴 적부터 자주 치과에 가서 충치 치료를 했고, 치료할 때의 그 기계 소리가 제일 싫었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치과를 가는 일이 되었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정말 양치질을 열심히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꼭꼭 치과 검진을 받으며 관리에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사랑니가 아프니 정말 걱정이 많았다. 미국에서 처음 병원을 가는 거였기도 했다. 아는 병원도 없어서, 구글에서 내가 가진 보험이 적용되는 곳으로 리뷰를 찾아 읽고 또 읽다가 사랑니를 빼는 건 일반 치과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구강외과 전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반 치과 의사 - Dentist
치열 교정 의사 - Orthodontist
구강외과 의사 (사랑니 발치 등) - Dental surgeon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내 사랑니는 하나뿐이라는 것 정도?
어찌어찌 예약을 하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360도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리고 의사를 만났다. 그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질문 세례와 함께 감탄에 감탄을 했다.
"Beautiful! Where did you get? It's Amazing!"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제 어금니의 3/4 정도를 금으로 씌운 이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며 신기해한 거였다. 한국에서 했다니까, 한국 의사가 한 거냐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 20여 년 전, 여의도에 있는 치과에 갔던 일을 생각해 냈다. 그때, 치과에 갔을 때 의사가 이 어금니 전체를 금으로 씌워야 한다고 하는 걸 내가 싫다고 우기면서 그냥 나의 원래 치아를 조금이라도 남겨달라고 했었다. 왜 그게 나한테는 중요했냐면 나는 꽃청춘 20대인데, 웃을 때 금이빨이 보이는 건 싫다 라는 게 그때의 생각이었다.
그 의사는 그게 쉬운 작업이 아니고,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라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고집을 꺽지 않는 애먼 환자 때문에 어려움 토로 팍팍하며 결국 나의 이빨 3/4을 힘겹게 커버했다. 그런데 그렇게 커버한 이빨이 20여 년 지난 후, 미국인 치과의사에게 찬사를 받은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여 년 전, KBS 앞에 있었던 여의도 모 치과 의사 선생님~
그때 짜증 많이 내셨었는데, 미국인 의사가 너무 신기해하며
동료 의사들한테 보여줘도 되냐고 대단하다고 칭찬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사랑니를 뽑아야 하는데, 어릴 적 기억이 나며 너무 무서웠다. 나는 의사에게 내가 얼마나 치과를 무서워하는지 정말 많이 설명했다. 미국인 의사도 이해한 것 같았고 나를 안심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랑니 발치 날짜를 잡았다.
드디어 이빨을 뽑기로 한 날,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치과에 갔다. 의사는 간호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며 마취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는 간호사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간간히 내게 질문도 했다.
의사 : (간호사에게) 어제 브롱코스 풋볼 경기 봤니?
간호사: 봤어. 재밌더라 블라블라..
의사 : (나에게) 너는 봤니?
나 : 어, 남편이 보더라.
의사 : 남편이 보는 동안 너는 뭐 했는데?
나 : 나는... 설거지했는데?
의사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와이프가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은 TV를 보고 있었다고?
나 : (생각해 보니 빡침) 그러게 말이야..(격한 동감에 입을 벌린 채 어버버버하는데..)
의사 : (뽑은 이빨 보여주며) 이것 봐.. 너무 귀엽다. 다 끝났어.
나 : 어? 벌써? 우왕!!!
이렇게 사랑니 뽑는 게 끝났다. 아무 느낌도 없고, 무서움도 없었고, 남편 뒷담화에 정신 팔려 이빨 뽑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하하. 너무 쉽게 끝나니 내가 오버액션을 했다는 생각도 들고 미국인 의사가 수다스럽게 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자기 할 일을 잘 해냈다. 그래서 오히려 시원섭섭한 감정으로 싱겁게 병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