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강릉 가는 길

by 정진영


길; 강릉가는 길


한여름 3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광복절이 금요일이라 특별히 휴가를 내지 않아도 연휴가 된 운 좋은 시간입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전날 시작된 평창 모임에 합류하기 위해서입니다. 두어 달 전부터 예약되었던 1박2일 모임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1일차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2일차에 합류하기 위하여 연휴 첫날 영동고속도로 위에 올라탔습니다.


7시에 출발하기로 했었는데, 꾸물거리다 10분 정도 늦게 출발했으니, 7시 30분경에 북수원IC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밤 티맵으로 시뮬레이션했을 때에는 1시간 30분이면 만종역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도착시간이 늦어져 결국은 3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30분 일찍 출발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차가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서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지난 10여년 간의 제 인생이 겹쳐 보였습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남들보다 늦게 교감 승진하기로 마음을 먹고서는 늦어도 그 길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훨씬 늦었지만 결국은 도달했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정했던 시간보다 늦을 수 있으니, 좀더 빨리 시작하거나 느긋하게 나아가거나 할 것입니다.


신갈JC를 지나기 전에 갑자기 지난 화요일 4-H지도교사 연수에서 상품을 받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경기도지도교사협의회 회장님께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면서 커피 쿠폰과 문화상품권을 상품으로 내걸었는데, 제가 상품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퀴즈를 두 번 맞추어 문화상품권 두 장을 받고, 우리 팀이 최종 우승을 하여 커피 쿠폰을 받았습니다. 2만원 상당의 상품을 받고 복권 당첨된 것 마냥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상품들을 교재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 교재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디다 뒀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화요일 밤 대청소를 마무리하면서 교재를 종이쓰레기와 함께 처분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수요일에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어서 저는 화요일 밤에 종이쓰레기를 정리합니다. 여주에 도착할 때까지도 간간이 상품 생각이 났습니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지 해도 아깝다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녀 속이 쓰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만종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탔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즈음에 개통된 영동선 KTX를 처음 타 봅니다. 기차는 30분 만에 평창에 도착했고, 역에서 기다리던 동료들과 함께 강릉으로 갔습니다. 동해가 다가올수록 하늘은 더 푸르고 높아보였습니다.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하늘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늘 운전석에 앉아있는 편이었는데, 뒷자리에 편안하게 있으니 강릉가는 길이 더 설레었습니다.



북강릉IC로 나와 박이추보헤미안커피공방에 도착했습니다. 박이추님은 1세대 커피 바리스타로 강릉을 커피의 메카로 만든 분입니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커피 마시려고 한 시간을 달려왔는데, 한 시간쯤이야 기다릴 수 있지 하면서 모두들 기다리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우리 차례는 오지 않았습니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금방 커피를 받을 수 있었지만, 샵에서 커피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계속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렸으니,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시간 만에 자리를 잡고 “파나마 게이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신비스러운 맛에 두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천항에 가서 물회를 먹고 다시 커피를 마시러 갔습니다. 이번에는 테라로사 사천점으로 갔습니다. 소나무가 멋스러운 사천해변에 있는 집입니다. 동료들에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나몬라떼를 권했고 함께 마셨습니다. 달달한 맛이 더위와 피로를 녹여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보헤이만커피와 테라로사커피로 강릉 일정을 가득 채웠으니 마치 커피 투어를 온 듯합니다. 귀가길이 급한 동료들이 차례로 떠나고 강릉에서 기차를 탈 사람들만 강릉역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울진가는 기차를 탈 예정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면 원했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이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이든 길고 짧고의 문제이지 인내의 열매는 달콤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하여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고 선택의 용기를 낸 후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 생각하는 시간보다 나의 선택에 성심을 쏟는 시간이 더 가치로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