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울진 가는 길

by 정진영

길 위에서; 울진 가는 길


강릉에서 5시 26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부산 부전역으로 가는 ITX기차로 저는 울진에서 내일 예정입니다. 올해 1월 1일 개통된 강릉에서 부산 가는 기차를 꼭 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풀이하는 시간입니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 기차이지만, 터널이 많다고 하여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고 올라탔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습니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동진, 묵호, 망상을 거쳐가는 기차는 도로를 달릴 때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바다를 접하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감탄과 부러움을 내려놓고 한 시간 정도를 달리자 창 밖으로 어둠이 가득 찼습니다. 삼척의 야경이 무척 멋졌습니다. 울진을 갈 때 지나는 삼척은 장거리여행 중 피로한 가운데 만나는 도시인지라 진면목을 볼 수 없는 지점인데, 기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는 삼척 해안의 야경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휴대폰 밧데리가 조금 밖에 남지 않아 가방에 넣어두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휴가철 3일 연휴의 첫날임에도 빈 자리가 많았습니다. 코레일톡에 매진된 기차표가 없어서 조금 의아했었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강릉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해안 기찻길이 열렸지만, 자가용이 훨씬 편리하니 기차는 여유로운가 봅니다. 덕분에 당일 예매가 가능했기에 저로서는 다행입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울진역에 도착했습니다. 울진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 캄캄한 역에 내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역무원 한 분이 기차를 보내고 돌아나옵니다.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 역사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사람이 없으니 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사 건물 밖은 어두워서 어디가 어디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 조금 헤매다가 큰 길로 나오는 방향을 찾았습니다.


울진은 모든 사람에게 버스 이용이 무료입니다. 버스를 이용해서 집에 가보려고 했는데, 어디서 타는지 잘 몰라 일단 버스터미널 쪽으로 갔습니다. 언제 버스가 올지 모르는 가운데, 택시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는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시내쪽으로 갔습니다. 7,200보 걸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에 걸어서 집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경찰서와 교육청을 지나 월변다리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5,000보 밖에 못 걸었습니다. 휴대폰이 3% 정도 남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방전되었습니다. 힘들게 걷고 있는데, 걸음 수도 못 채우겠구나 하고 난감했습니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은 가운데 군청 앞까지 가서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님께 “새마실 비석거리”를 가자고 말씀드렸는데, 내리기 전에 기사님께서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비석거리를 어떻게 아냐고요.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비석은 오래 전에 자리를 옮겨 비석거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텐데, 저는 저도 모르게 비석거리를 가자고 했고, 기사님은 저에게 비석거리를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신 것입니다. 이제 곧 비석이 없는 비석거리는 잊혀질 것입니다.


고향집에는 친정엄마 홀로 사십니다. 냉난방을 제대로 안 하셔서 집에 가면 좀 힘들게 지내다 오는데, 오늘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십니다.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옷을 빨아서 널어놓은 다음 마실을 나갔습니다. 둑방을 따라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너무 더워서인지 산책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랫말까지 내려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TV를 보았습니다. 최근 재미를 들이게 된 현실과 비현실을 빠르게 오가는 드라마 “트라이”를 보면서 주가람과 배이지, 서우진의 시선을 함께 느꼈습니다.


아침에 의왕을 출발하여 원주와 강릉을 거쳐 울진까지 왔습니다. 만종역에서 훈이네 마늘빵과 커피를 마셨고, 강릉에서 물회와 커피 두 잔을 마시고 집에까지 왔는데,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크게 허기지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일일 생활권”을 설명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이 발달하여 곧 일일생활권이 되어 편리해질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래과학상상글짓기에서 상을 탄 적이 있는데, 그 내용 중에는 1인 1전화기, 무선 전화기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상상만 하던 내용들이 대부분 실현된 지금,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며 꿈나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