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사서 Oct 05. 2020

말의 그릇은 마음의 그릇

김윤나, 『말그릇』



아무리 인격을 다스린 척해도 사람의 말은 언제나 내면의 진실을 보여준다. 아주 높은 위치에 앉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실망한 적이 많다. '저렇게밖에 말을 못 하나? 저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던 대화의 시간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도 옹졸한 속은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레절레하던 일들이 종종 생긴다. 


그런 나도 물론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꼭 한 가지 이상 후회를 한다. 보통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럴 때마다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다. 그러고 곰곰이 한 동안을 생각해 보다 보면 내 마음속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곤 한다. 결국은 성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속에 있는 마음을 깊이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늘 반성하고 고쳐야 할 마음속 건더기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말은 언제나 잘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유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려 깊다는 의미로), 세바시에서 이 책 저자의 강연을 봤다. 말에 대한 강연은 연수받을 때도 많이 들어서 다 뭐 그런 비슷한 내용이겠지, 하고 영상 첫 부분만 보고 넘기려 했는데 예상을 뒤엎었다. 스킬을 가르치던 다른 강의와는 달리 말하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강조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성경적 진리이기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서도, 일반 도서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첫인상부터 좋았던 책. 이 문장 덕분이다.


'말'이란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매일매일 쌓아 올려진 습관에 가깝기 때문이다.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숙성돼서 그 사람만의 독특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오는 게 바로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말 잘하는 '기술'만 익혀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말 습관을 기를 수 없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 습관을 지니고 싶다면, 말 그 자체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나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8 p.


책에는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저자가 커뮤니케이션 코칭 전문가로서 실제로 상담하거나 코칭한 사례들이 담겨 있는데, 현실적으로 적용한다고 상상해봤을 때 진짜 그렇겠다 싶고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보통 다른 책들의 사례들을 보면 '이게 진짜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사례들은 충분히 결과가 납득되는 솔루션들이 많이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특별히 책을 읽으면서 대화 속에서의 '질문'이라는 행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질문은 관심이다. 관심 없는 질문은 오히려 질문을 듣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거리를 두게 한다. 이걸 보며 질문도 공부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 그 사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질문은 그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에서 나오기에. 남들이 주야장천 하는 똑같은 질문들을 받으면 오히려 그게 스트레스가 되는 경험을 많이 받았다. 이 사람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근데 왜 지난번에 물어본 걸 또 물어보지? 하는 경우도 있다. 질문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의 대화라는 것을 내가 주인공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임을 강조한다. 요즘 나오는 책들 답지 않게 이타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즐겁게 읽어 내려갔던 책이다. 내 내면의 그릇을 부단히 넓혀서 말의 그릇도 더욱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같이 대화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해받으려 하기 전에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말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인성과 성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돌아보는 것, 말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 285 p.





▲추천하는 대상

- 자신의 말에 개선이 필요하다 싶은 회사 상사들.

- 내 속에서 나오는 말이 좀 더 따뜻하기를 바라는 사람.

-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비추하는 대상

- 대화 스킬을 속전속결로 배우고 싶은 사람.




*남겨두기


"말은 당신을 드러낸다. 필요한 말을 제때 하고, 후회할 말을 덜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말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키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말은 당신이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그러니 진정한 말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무엇보다도 당신의 일상이 말 때문에 외로워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11 p.


"말하기 실력이 부족해서 무조건 듣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래, 너는 떠들어라.' 식의 무시하기도 아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름'과 '특별함'을 이해하고 있기에, 말 자체를 평가하거나 상대방의 말하기 실력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의 불안함을 낮추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그릇이 큰 사람과 대화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 32 p.


"사람들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 조언해준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들의 말일 때가 많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대답을 함께 찾아보는 대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말을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리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검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때까지 따뜻하고 세밀한 기술로 배려해준 사람을 만났을 때 힘을 얻는다." - 37 p.


"사람들은 안전한 사람에게만 속마음을 열어 보인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아는 척하며 평가하지 않을 사람,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성급히 결론짓지 않을 사람에게만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 168 p.


"듣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표현하는 말과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말을 모두 듣기 위해 노력하지만, 말하는 힘만 센 사람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 삼아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 한다." - 174 p.


"친구의 마음이 담긴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생각했다. 주의 깊게 듣고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굳이 힘내라고, 근사한 말을 보태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첫 마음이 있다. 잘해보고 싶은 기대가 있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열망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을, 나도 꽤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 질문은 바로 그런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 226 p.


"요즘에는 그런 마음으로 말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내 말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어떤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세상에서 넘어질 때마다 엄마의 말을 꺼내어 본다고 생각하면 말로 아이를 매질할 수 없다.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그렇다." - 310 p.

매거진의 이전글 과잉의 시대에서 선별의 시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