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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디 May 02. 2024

어쩌다 보니 사교육 한번 안 받고 중고딩이 된 아이들

학원다닐 시간이 없었거든요.

"엄마~ 우리 반 애들 무슨 어벤저스 모아놓은 느낌이야! 조용한 애들도 알고 보니 엄청난 능력치 하나씩은 있더라? 거의 다 영유출신에 국제학교 다니다 온 애들도 있고, 예고 준비하다 온 애들도 있어. 그리고 다들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도 많더라고. 수학은 또 다들 어찌나 잘하는지 못하는게 없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주에 몇몇 친구들을 사귀고 온 웬디가 흥분하며 말한다.

"그래? 오~ 진짜 다 능력자네"

"나는 내가 영어만큼은 괜찮겠지 생각했거든? 그런데 우리 반에서 내가 못하는 수준이라니까~"

"그렇구나"라고 태연한 척 말하며 캘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아이들 학업수준이 진짜 장난아니구나!'


그동안 대한민국 입시교육과는 약간 동떨어진 교육관을 고수해 온 캘리는 미국에서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목동에 자리를 잡았다. 캘리를 잘 아는 지인들은 학군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캘리와 남편 폴도 미리 계획했던 동네는 아니었다.지금까지의 라이프 스타일처럼 우리는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비교적 한적한 동네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정한 곳이 용인 수지였다.

수지는 친한 친구 J와 동생네가 살았던 동네라서 몇번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깨끗하고 좋았던 느낌이 있었다. 신분당선 라인과 가까운데 살면 폴이 강남으로 출퇴근하기에도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동이나 경부고속도로 타기에도 좋은 동네라 주말에 여행다니기에도 좋아보였다. 중고등 아이들도 전반적으로 순하고 착한 분위기라는 친구의 말도 결정에 한몫했다. 친구 J도 동네주민된다며 좋아라하고 캘리도 J와 한동네 산다는 생각에 여러모로 의지가 되었다.


그런데 귀국하기 한달전쯤 우연히 목동을 떠올렸다.

일단 친정집과 가까워서 부모님께서 무척 좋아하실 것 같았고, 당분간 제주를 오가야 하는 폴도 김포공항 접근성이 좋으니 편할 것 같았다. 아이들 면학분위기야 유명한 동네이니 학교 걱정도 해결. 문제는 집 전세가였다. 요즘 현금흐름도 안좋은데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대충 알아보니 평수를 훅 줄이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아파트 매매가는 매우 비싼 동네지만, 워낙에 오래된 아파트들이라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낮았다. '어찌어찌하면 서울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것 같은데...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5년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한번 버텨봐?'


캘리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물어봤다.

"여보, 우리 목동으로 갈래?"

"목동? 어! 좋다! 우리가 왜 목동 생각을 못했지?"

남편의 반응이 의외였다. 갑자기 너무 좋아한다.

"나 사실 용인은 당신이 좋다고 하니까 좋은가보다..한건데, 내 입장에서는 애매한 곳이었어. 그런데 목동은 진짜 괜찮은데? 우리가 들어갈만한 전셋집이 있을까?"

"응. 있긴 있어. 대신 평수를 훅 줄여야 해. 그런데 뭐 이제 애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당신도 발령받기 전까지는 제주에서 지내야 하니까 난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럼 목동으로 가자"

이렇게 귀국 한달전에 갑자기 결정하고, 귀국하자마자 이틀만에 집을 구했다.


그동안 학원 한번 안다녀본, 게다가 1년의 학습공백까지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목동 입성이라니...

어찌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다.

지금껏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 교육철학이었던 캘리가 학군지 한복판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지인들이 놀랄만도 하다. 다들 가장 많이 해준 말이 "아이들 괜찮을까?"였다.

그런데 이 말은 캘리네가 미국으로 떠나기전에도 들은 말들이었다.

영어학원 한번 안다녀본 아이들을 데리고 국제학교도 아니고 미국 공립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니 "아이들 적응하기 괜찮겠어?"라며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걱정과 우려 덕분인지 웬디와 핸리는 전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ELD반부터 시작을 해서 한학기가 지날 즈음에는 영어를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 낯선 곳에서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고, 리더쉽 밴드활동 그리고 각종 체험학습과 연주봉사회도 다녔다. 결국 둘 다 1년간의 성적표는 올A로 찬란하게 마무리하고 귀국했다. 그저 학교만 잘 다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주었던 아이들이다.


서울에서 제주갈때도 느꼈지만 아이들의 적응력 하나는 참 남부럽지 않다고 캘리는 생각했다.

미국에서처럼 이번에 정착한 목동에서도 그저 학교만 잘 다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일단 지금은…


캘리와 폴은 둘 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이들의 초등교육만큼은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에서 시키고 싶어서 제주로 떠났다. 제주를 선택하기까지 동해, 강릉, 청평, 양평, 부산, 남해 등을 후보지에 올려두고 열심히 보러 다녔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3번 해보고 결국 제주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처음엔 일년살이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떠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울집을 처분하고 갔다.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2년은 채워야지. 했다가 결국 6년을 살았다.

큰딸 웬디는 초3-중2를 제주에서 보냈고, 둘째인 아들 핸리는 초1-초6을 보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매일이 체험학습이었다.

바다와 산, 올레길이 모두 10-20분 거리에 있으니 방과 후에 우린 바다로 달려갔고, 올레길을 걸었고, 오름에 올라 제주의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 예술의 전당과 아트센터에서는 서울과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공연들이 많았다. 심지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연주회와 전시도 많았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제주에서 직항노선이 있는 해외에도 자주 다녔다. 생각보다 저렴한 노선이 많았기 때문에 미리 예약만 잘하면 아주 가성비 좋은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6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도 행복해하고, 우리도 행복했다.

둘 다 학교 수업 잘 따라가고, 숙제는 성실하게 해 가니 영어나 수학학원 보내는 시간과 비용을 이 행복하고 귀한 경험들과 바꿀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다고 사교육을 아무것도 안 시킨 건 아니었다. 방과 후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은 악기를 하나씩 배웠는데, 그 경험으로 오케스트라 활동만큼은 꾸준히 했다.


제주에서의 6년은 웬디와 핸리에게는 경쟁에 노출될 일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학원에 다니질 않았으니,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영단어를 외우고 수학선행을 나가고 있는지 몰랐다.

친구들에게 학원얘기를 들으니 분위기를 알긴 알았겠지만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아빠가 책 많이 읽으라는 소리는 했어도, 공부하라는 압박은 안 하니 공부스트레스라는 것이 딱히 없었다. 웬디는 자긴 정말 행복한 아이 같다는 말들을 자주 하곤 했다.

반면에 엄마인 캘리는 가끔 '아이들이 너무 놀고만 있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바람처럼 왔다가긴 했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어차피 입시노선 안 타려고 제주로 내려온 거잖아?'라며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제주에서 중2, 초6을 마쳤고 남편의 해외연수 발령으로 다 함께 미국에서 1년을 보낸 후,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영어, 수학 학원을 일부러 안 보낸 건 아니었지만 이러한 스토리로 지내다 보니 사교육 없이 고1, 중2의 나이로 목동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이제 웬디는 고등학교 3년만 보내면 졸업이고, 핸리는 5년 남았다. 지금까지 사교육에 쏟아부은 돈이 거의 없으니 캘리부부는 아이들이 지금까지 거저 커 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이들이 원하면 학원이든 과외든 시켜주기로 했다. 단, 아이들이 원하면!


문제는 아직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뭐가 뭔지 모를 수도 있겠다.

심지어 웬디는 "엄마, 친구들 다니는 학원을 대충 물어봤는데 아무래도 내 수준에 맞는 곳은 없는 거 같아. 일단 혼자 기초를 많이 다진 후에 학원을 다닐 수 있을 거 같아. 지금은 학교 공부도 따라가기 벅찬데 여기에 학원수업까지 어떻게 소화를 하겠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담임선생님이 웬디는 메타인지가 높은 것 같다더니, 본인이 뭘 모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웬디는 일단 혼자 해보고 모르는 건 선생님들께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해결하겠다며 3월부터 야자(야간자율학습)와 스카(스터디카페)를 오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캘리는 안쓰럽다.

'미리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작년에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 중3 과정이 매우 중요하니 교과서만이라도 여러 번 돌려봐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해줬었다. 그러나 시험 없는 공부가 될 리가 있나. 미국에 있는 동안은 미국학교 적응과 과제해결만으로도 벅찬 시간들이었다.


중2 과정을 시작한 핸리도 친구들의 학업역량을 보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고2, 고3 수학을 하고 있단다. 사피엔스를 원서로 읽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며 자긴 번역본도 안 읽어봤는데 대단하지 않냐고 한다. 대단하다. 솔직히 캘리도 놀랐다. 다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을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웬디와 핸리는 부족한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캘리와 폴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일단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기로 한다. 사실 또 할 수 있는게 그것뿐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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