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열 합격 사례
고등학교 3학년이 시작되는 3월, 나의 교무실 책상 위에는 늘 빠지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사각통 속에 담긴 ‘휴지’ 한 곽이다. 자신의 꿈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학생도 그랬다. 학군지 일반고에서 내신 1등급 중반.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우수한 성적이지만, 이 치열한 학군지에서 수도권 일반고이기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의예과에 도전하기엔 현실적인 벽이 너무나 높았다.
선생님, 의학계열을 가고 싶은데... 제 성적으로는 무리겠죠? 수도권 한의예과도 좋을 것 같아요...
이 학생은 어릴 적부터 품어온 의사라는 꿈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지원 범위를 좁히며 눈물을 보였다. 학생이 내놓은 선택지는 당장의 내신 성적으로 스스로를 가두어 둔 한의예과였지만, 그 눈물 속에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의학적 탐구에 대한 열망이 맺혀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휴지를 건네며 마음속으로 장승요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고사를 떠올렸다. 안락사 벽에 그려진 용 그림에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 넣자 용이 승천했듯, 학생이 포기하려 했던 그 꿈에 제대로 된 '눈동자'를 그려 넣는다면, 의학, 약학, 한의학 등 어느 길을 걷더라도 학생이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주도적인 입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학생의 학생부 속에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눈에 띈 것은 2학년 생명과학Ⅰ 수업 중 기록된 '헌팅턴병'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었다.
처음에는 자율신경계와 연결하려 했으나, 다른 과목과의 연결성이 매끄럽지 않았다. 나는 과감히 방향을 틀어 ‘현상을 화학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생명과학 + 화학 : 단순한 질병 조사를 넘어, 세포막 인지질과 단백질이 결합하는 기전을 이온성 인력과 소수성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내게 했다. 고교 과정을 넘어 생화학 전공 서적을 뒤지며 단백질 잔기의 전하적 특징까지 파고드는 아이의 '집요함'을 기록에 담았다.
병리학적 메커니즘의 완성 : 유전자 변이가 어떻게 단백질 응축을 일으키고 뇌세포에 영향을 주는지, 그 인과관계를 병리학적 관점에서 증명하도록 지도했다.
의학계열 전반을 잡기 위한 ‘해결사’의 관점
‘정답을 잘 맞히는 학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자’로서의 인재를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이 학생이 최신 논문을 분석하며 세 가지 치료적 접근법을 제안하도록 이끌었다.
Hsp70 샤페론을 이용한 단백질 응집 회복
리포좀 기술을 활용한 약물 전달
유전자 발현 억제를 통한 근본적 치료
이 과정에서 학생은 의학계열 연구자가 갖춰야 할 임상적 통찰력과 신약 개발적 사고를 동시에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결국 아이는 학종으로 의예과와 약학과 지원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서울권 약대와 지방권 의대 동시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내신 등급이 학생의 모든 역량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이 학종으로 합격하는 경우를 보면서 배운 진리였다.
학생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록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탐구하여 어떤 역량을 증명했는가'이다. 학생들의 학생부 속 용, 그 안에 숨겨진 작은 실마리가 마지막 눈동자를 만나 하늘로 승천할 용이 될 수 있다.
이 글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행복한 결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