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건 잃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뿐.
인간은 언제나 후회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나는 대체로 아쉬워하고 말곤 했다. 하지만 인생 제대로 헛살았다고 생각할 만큼 후회하는 일이 있다. 평소에 남자친구와의 기념일도 까먹는 내가 단톡방의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고 크리스마스인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25일 자정이 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자를 받았을 때였다.
' 여러분이 사랑해 주신 OO가 여러분 곁을 떠나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
문자 발신자는 내게 정말 각별했던 동생이었다. 친동생보다 더 각별하다고 생각했던 동생. 그 애는 나를 '전생에 내 엄마'로 저장했고 나는 그 애를 'OO같은게귀염터져가지고는'이라고 저장했다. 그냥. 정말 그냥 서프라이즈겠거니, 스케일이 많이 큰 몰카겠거니 하고 안내된 장례식장에 갔을 때도, 연말에 남은 연차를 다 쏟아부은 휴가를 갔을 때도, 그리고 지금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탓을 했다. 어설프게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던 그 애의 남자친구를 탓하고, 재혼한 새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기 딸을 바다에 뿌려야겠다던 그 애의 아버지를 탓하고, 유서에 쓰인 그 애의 전 남자친구를 탓했다. 그 탓은 차례를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결국 내가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하다 대학 간다 할 때 같이 데려갈걸, 이사한다고 할 때 가지 말라고 할걸, 역마살이 낀 것처럼 전국으로 이사를 다닐 때도 데리고 다닐걸 하고 후회하던 나는 결국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나를 가장 의지했고, 내가 일이 바빠 'ㅋㅋㅋㅋㅋㅋㅋ'라고만 답장하던 나를 기다리고, 내게 잔소리를 들어도 그냥 웃고 넘어가던 그 애의 손을 놓은 것은 결국 나였으므로. 얼마나 미웠다면 유서에도 내 이름 하나 언급하지 않았을까. 결국 그 애를 죽인 것은 나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 걔가 죽기 전에 사진이랑 연락처를 정리했는 데, 언니 사진 폴더가 따로 있었어요. '
부모도 오지 않아 남자친구가 치르는 49재에서 그 애의 친구가 내게 이 사실을 전했다. 이 말을 듣고 수도 없이 울었다. 그제서야 나를 너무나 아끼고 나를 너무 걱정해서 유서에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싫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마음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애가 죽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그 애가 내 꿈에 나타난 건 두번이었다. 한 번은 장례식 다녀온 다음날 '언니 사랑해'라며 내가 너무 듣고 싶은 말을 카톡으로 보낸 꿈이었고, 한 번은 자기가 죽은 걸 자각하라는 듯이 자신과 카톡 하는 나한테 '언니 나 죽었는 데 누구랑 카톡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 아무도 오지도 않을 그 애의 생일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제발 나타나길 바라며 잠들어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2주에 한번 만나는 의사 선생님은 예약된 진료일이 아닌데도 방문한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누구나처럼 내 탓이 아니고, 우리가 답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덧 붙이셨다.
'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거예요. '
으레 하는 이야기겠거니, 누군가를 잃어도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와 동일한 맥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깨달아버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는 남 일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라는 걸. 산 사람은 절대 살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죽은 자와의 추억이 넘치는 데, 그것을 어떻게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가.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애를 잊지 않기'로 원피스에서 그랬지 않는 가. '사람들에게서 잊혔을 때'야 말로 정말로 죽는 거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애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애를 떠나보낸지 17일째가 된 날. 그 애가 내게 입양시켜 준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회사사람에게 나눔 받은 간식을 먹인 후였다. 내 눈을 마주치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두어 번 울더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이미 늦은 뛰었다. 심폐소생술을 묻는 수의사한테 괜찮다고 했다. 이미 수술이며, 항암치료며, 입원이며 병원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애한테 마지막까지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시키고, 루쎄떼로 변해버린 고양이를 안고 또 울었다.
그렇게 새해가 보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어르고 달래서 억지로 저 심연에 가둬 놓은 우울과 불안, 무기력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