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by 유의미

종합병원 내외과 병동에서 간호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취업하기전에는 취업만 하면 돈도 벌고 내가 사고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대학 3년을 버텼다. 그런데 막상 취업후 병동 간호사로 일해보니 이곳은 더 했으면 더했지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매일 지옥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환자는 많았고 주어진 일은 더 많았고 주어진 시간안에 이것을 해내야했다.

그러나 신규 간호사가 그 모든 것을 다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것은 윗년차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해야했다.

그 시절 나는 그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성격이라 선생님들이 참 답답해했다.




그 때 같이 입사한 동기가 3명 있었는데 나보다 2달 빨리 왔다.

같은 동기더라도 입사월이 나보다 앞이면 내가 막내중의 막내가 되는 그런 위계서열이었다.

군대에서도 이등병 일병 이런식으로 가듯이 말이다.




프리셉터 제도라고 해서 병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2달 동안 트레이닝을 해주었는데

2달 동안 트레이닝을 받고 혼자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어떡해든 해내야 한다는 마음과 이걸 내가 혼자서 할 수 있을까? 라는 두 마음이 들었다.








간호사는 차지 간호사(환자 차트를 보면서 주치의에게 오더를 받는 사람),

액팅 간호사(차지 간호사가 받은 오더를 지시하면 처치하는 사람: ex) 피검사, 근육, 정맥주사 등등)

로 나누어지는데 요즘은 팀널싱 제도로 내가 내 환자 오더를 받으면서 액팅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한다.

당시 내가 있던 병동은 펑셔널 제도라 액팅 간호사로 1년 동안 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많은 실수를 했고 그때마다 자괴감이 들었으며 간호사는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늘 하고는 했다. 입사하고 6개월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 샤워, 일만 했다.

특히 데이 근무 때는 첫 차를 타고와도 6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바람에 병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막내들은 물품 카운트라는 것을 해야했는데 병동내 드레싱 기구나 물품 등을 카운트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이 물품 카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데이로 출근할 때는 보통 5시반까지 병동에 도착해서 물품 카운트를 하고 그 날 아침 돌릴 주사제를

준비했다. 물론 혼자했던 건 아니고 동기가 같이 나오거나 그 윗년차가 나오면 같이 주사제를 준비한다.




그리고 낮밤, 밤낮이 바뀌는 순환근무체제에서 내 한 달 스케쥴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만큼 바빴다.

병원 집 병원 집만 반복하느라 날씨가 어땠는지도 모를만큼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6개월후 조금 일이 익숙해질무렵, 그때부터 20분 거리의 서점으로 출퇴근 하기 시작한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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