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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4. 2015

21 사기꾼이 성자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

프랑스 파리

21

사기꾼이 성자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파리로 가는 지하철을 타다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파리 시민들에겐 ‘쓰레기를 길거리와 공공시설에 투척해야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굳은 믿음이라도 있는 것인지, 도시 구석구석마다 쓰레기가 알차게 뒹굴고 있었다. 문득 런던이 떠올랐다. 파리는 깨끗했던 런던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뿐인가. 런던의 지하철, 그러니까 언더그라운드는 매우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질서의 지배 아래 평화롭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파리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개찰구엔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장치가 이중삼중으로 덕지덕지 덧대어져 있었는데, 파리 시민들은 솜씨 좋게 이 장치들을 피해 무임승차를 해댔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조차 서로 완전히 다른 모양새였다. 런던의 언더그라운드역 입구가 명쾌하고 단순한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면, 파리의 지하철역 입구는 마치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하고 복잡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파리 지하철역 입구의 모습. 보면 볼수록 파리와 잘 어울리는 모양새다.




도시 내 상주하는 소매치기와 잡상인의 비율은 또 어떤가. 내가 겪은 런던은 서울이나 도쿄 등 동아시아 국가의 수도를 압도할 정도로 치안 수준이 높았다. 반면 파리의 경우, 거리마다 널린 게 소매치기요, 잡상인이었다. 특히 몽마르트 언덕이나 에펠탑 같은 곳은 그야말로 소매치기와 잡상인의 소굴이었다. 그나마 로마에선 경찰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이들의 활동을 제약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왠지 파리에선 그런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팡테옹에서 만난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무덤 앞에선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마저 지나치게 달랐다. ‘빈자(貧者)의 수호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았던 찰스 디킨스는 왠지 그 자체로 영국 같았다. 반면 평생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리고, 정치적 문제로 수없이 망명길에 오른 빅토르 위고의 삶은 어쩐지 프랑스 그 자체였다. 그들이 남긴 작품도 가만 보면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 실은 얼마나 다른가.


한마디로 런던은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예의 바르게 자란 공주님 같았고, 파리는 예술적 기질은 풍부하지만 제멋대로 살아가는 골칫덩이 같았다. 마지막 여행지가 될 파리와 프랑스는 이렇듯 별로 친절치 않은 인상으로 첫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이 파리와 프랑스에 크게 정이 들어있을 줄을. 파리에선 8일을 머물렀다. 최근 인기를 끈 tvN 드라마 ‘미생’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3분은 사기꾼이 성자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사람뿐 아니라 도시에 대한 인상도 짧은 시간 내에 바뀔 수 있는 것인가 보다. 8일은 더럽기만 했던 파리가 매력적인 도시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 곳을 가도 넘쳐나던 세계 각국의 관광객. 그리고 그 속에 섞여 에펠탑이니 개선문이니 베르사유 궁전이니 하는 파리의 명소를 찾아다니던 나. 온갖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에 서서 감격에 겨워하고,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대가의 작품을 보며 몸을 떨다가 이 도시의 힘이 무엇인지 어렴풋 절감할 수 있었다. 비록 시내는 깔끔하지 않고 사람들은 제멋대로지만, 혁명과 예술의 정신을 역사의 최전선에서 세계에 전파해 온 위대한 도시 파리. 그래서 이 도시엔 어느 한 순간, 문득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영화 ‘비포 선셋’ 첫 장면에 등장하는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노트르담 성당.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의 배경이 된 장소다.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사크레 쾨르 성당


몽마르트 언덕에서 한 흑인 가수가 즉흥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저무는 태양 아래서 함께 음악을 즐기던 사람들. 하늘 높이 울려 퍼지던 비틀즈의 ‘Let it be’.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 2014년 마지막 날, 개선문에선 멋진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인 대형 시계를 안에서 바라본 모습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파리를 떠나는 날 오전 찾았던 바스티유 광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습격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첫인상은 역시나 별로였다. 약 50m의 기념탑이 광장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 별달리 볼 게 없는 장소였다. 시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닥엔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꺼내 영화 ‘레미제라블’의 OST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재생하자 바로 그 ‘어느 한 순간’이 찾아왔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Singing a song of angry men(성난 민중의 노랫소리가)?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노래가)!…” 힘찬 노래가 이어폰을 타고 귓가로 흘러들었다. 내가 살아오며 배워온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과 예술작품이 떠올랐다. 심장이 뛰었다. 고개를 들었다. 다시 바라본 광장은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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