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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6. 2015

outro

Thank you for sharing your time with me!

outro Thank you for sharing your time with me!


한국에 돌아와 여행 중 기록한 것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기록할 당시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아마 여행을 할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 이역만리에 있던 당시와, 구직 문제나 타인의 시선 등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가 나를 옥죄어 오는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저런 부담감에 여행기를 매듭짓는 일도 늦어졌다. 뒤늦게 여행의 기억을 복기하려다 보니 여행기의 생생함이나 밀도가 떨어진 것 같아 약간 속상하기도 하다. 대신 장기간의 여행을 다녀온 후 일상으로 복귀한 소감에 대해선 보다 현실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됐다.


80일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내게 엄청난 사고의 확장이나 천지가 개벽할 만한 변화가 있을 리 없다. 개인에게 피로와 피곤을 과도하게 부과하고, 서로가 서로를 시선이란 이름의 감옥으로 가두는 한국 사회 또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어느덧 언제 여행을 다녀왔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구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다.


다만 한 가지는 잊지 않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으려 한다. 여행을 막 떠난 직후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음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좋다, 좋다” “우와, 우와” 하는 것을 선택하지 말자. ‘지금의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마음 속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자. 순간순간 기억에 남을 날을 만들어 가자. 앞으로도!


이제 ‘유럽’이란 단어를 들으면 내가 들렀던 도시의 풍경과 만났던 사람의 얼굴이 마음속에 부표처럼 떠오른다. 먹었던 음식과 들었던 노래, 바라보던 그림과 순간순간의 감정까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마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테다. 망각의 늪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던 지난해의 80일은 그렇게 머리와 가슴 속 깊이 각인됐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올드타운 호스텔(Oldtown Hostel)’은 노부부 단 둘이 운영하는 작은 숙박업소다. 대형 체인 호스텔과 달리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크게 울린 건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였다. “3일간 감사했다”라는 나의 작별 인사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Thank you for sharing your time with us.”


‘네 시간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어서 고맙다’라… 79박을 했지만 그런 인사를 듣기는 또 처음이었다.


8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여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 대다수는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내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은 세월의 더께에 묻힌 기억을 순식간에 소환시키는 강력한 매개체다. 시간을 나누어 준 이들 덕분에 80일간 여행하며 만난 풍경을, 바람을, 또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안내서의 마지막은 진부하지만 이렇게 맺어야 할 것 같다. 유럽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 만나서 정말 진심으로 반갑고 즐거웠어요. Thank you for sharing your ti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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