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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Jan 01. 2024

네팔 포카라에 가다 5 - 카이로스의 시간

또 한 해가 훅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다시 돌아본다. 내가 지난해 뭘 하며 살았지? 특별히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년과 똑같이 학기마다 매주 강의하고 중간에 이렇게 브런치에 글 쓰고, 가끔 운동하고  책 읽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다. 여름방학, 가을학기를 보내고 이제 겨울방학을 맞는다. 특별한 변화가 없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이 있다. 지난 2월부터 캘리그래프를 시작했고 커피 바리스타 1, 2급 자격증을 딴 기억이 되살아난다.     


신년에 또 야무지게 계획을 세운다. 캘리그래피와 수영, 골프를 더 제대로 배우고 글을 자주 쓰고 싶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려고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작년에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간 것 빼고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 그때를 회상할 때면 상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대 그리스인은 신화를 통해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분별하였다. 우리는 아직도 시간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어 단어조차 없는데, 그 예전에… 대단한 사람들이다. 조상의 공덕을 지금도 누리고 있으니 복받은 민족이다. 그러니까 크로노스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이다. 한 시간은 60분, 하루는 24시간, 일 년은 365일 등과 같이 시계와 달력이 가리키는 객관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은 주관적이며 정성적인 시간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순간이지만 구체적인 사건 속에  놀라운 체험을 하고 특별한 의미를 주는 상대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똑같이 하루를 혹은 일 년을 보내더라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우라는 흐르는 시간의 밀도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크로노스 시간 속에 살지만 서로 다른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20대는 시간당 20km 속도의 시간, 30대는 30km/h, 60대는 60km/h 속도로 시간이 지나간다고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오늘이 어제와 같고, 올해도 작년과 다를 바 없고 새해도 변함없이 똑같이 흘러간다. 매일 의미 없는 시간만이 흐를 뿐이다.      


그런데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흐른다. 연인과 함께 했던 시간도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왜 시간은 다르게 흐를까?     


최근에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나와서 설명하는데 일리가 있다. 어릴 때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기억에 오랫동안 새기기 위해 뇌가 활성화된다. 그때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의 경험은 기억에 오래 남으면서 그 경험의 순간이 상대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은 없고 다 예전에 체험한 것이라면 굳이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뇌가 비활성화된다. 뇌는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해 반응할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에 도파민을 그다지 분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이 의미없이 훅 지나간다고 했다.


결국 경험의 유무에 따른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여행지도 자주 가고 비슷한 체험을 하면 여행의 즐거움이 떨어지는 이유다. 마치 생각하지도 못한 보너스에는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지만, 이미 받아왔고 또 예상되는 보너스에는 그 기쁨이 반감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겪은 포카라에서의 경험이 그랬다.

난생처음으로 울트라라이트 비행기를 탄 그 시간은 나의 기억에 확실하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시간은 지금도 영상으로 슬로모션을 보는 것처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 한 가지 더 경험한 것은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포카라 여행지에서의 울트라라이트 비행 경험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얻을 수 있는 작은 경험이다. 여행지에서 새롭게 경험한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료한 일상에서의 의미 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카이로스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포카라 여행의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말이다. 글로 쓰면서 그 순간이 마치 정지화면을 보는 것처럼 길게 기억된다. 실제로 당시에 찍은 영상을 보면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말이다. 글 쓰는 이 시간은 느린 영상을 재생하면서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지나간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채색이 되고 윤색이 되지만, 글로 쓰는 순간 의미 있는 순간이 조금씩 빛을 발하기도 하고 어떤 경험은 색깔이 바래진다. 색이 바래진 기억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여행지에서 경험들이다. 다시 그 여행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함께 올라온다. 신기한 일이다.    





다시 포카라 울트라라라이트 비행기로 돌아간다.      

런웨이를 털털거리면서 달리는 이 작은 장난감 같은 게 제대로 날 수는 있을까?라고 내심 생각하는 순간, 내 속을 알아 들었는지 조종사가 갑자기 속력을 높인다. 울트라라이트 비행기는 말 그대로 오리깃털이 바람에 날리듯 사뿐히 땅을 딛고 하늘로 올랐다.     


우와~

내가 너무 무시를 했구나,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일단 창공을 나르고 아래를 보니 포카라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다. 마치 오토바이를 하늘에서 타는 기분이다. 영화 빠삐용의 주제가처럼 "당신도 저 바람처럼 그렇게 자유로워야 해"라는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 Free as the wind that is the way you should be -.    


고도를 높이면서 산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그 유명한 마차푸차레 삼각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가까이 보니 더 감동적이다. 물고기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Fish Tail Mountain'이라고 불리며 마차푸차레는 네팔어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이다. 네팔정부는 이 산이 신이 살고 있기 때문에 산악인과 일반인의 접근을 막아서 이렇게 상공에서 가까이 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이고 뒤로 길게 히말라야 산맥이 희미하지만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울트라비행기가 3,000미터 상공에서다. 마차푸차레 봉우리를 한동안 보고 있으니 기분이 최상이었다. 자꾸 보니까 역시 감동이 차츰 줄어든다. 기쁨은 한순간일 뿐 서서히 줄어든다. 쾌락은 늘 순간적이다. 인간의 숙명이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조종사가 갑자기 엔진을 끈다.

이건 뭔 시추에이션..? 무슨 기쁨을 또 주려고? 엔진을 끄니 주위가 조용하다. 그 작은 비행기는 바람에 실려 아주 천천히 롤링을 한다. 안나푸르나를 눈앞에 두고 상공에서 뱃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그 순간, ‘내가 잘 선택했구나’ 한번 더 만족했다. 사위가 고요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3,000미터 상공에서 조그마한 비행기 속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받으면서 그 순간의 고요함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와 약 3,000미터 상공에서 엔진도 없이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 공중을 떠다닌다. 안나푸르나가 다시 멀리 보인다. 그 장엄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깨지기 쉬운 여행용 포장박스에 'Fragile'이라는 태그를 붙인다. 그 말이 생각났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아주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한다.

중력을 거스르면서 창공을 향해 비상했지만 그 높은 상공에서 다시 죽음을 떠올린다. 내가 얼마나 ‘Fragile’한 존재인가를 말이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그 상공에서 즐거움과 두려움이 교차한 순간은 나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지금 다시 돌이켜본다.

나의 카이로스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나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또 다른 기회를 나에게 주었던 시간이 있었을까? 기억을 떠올린다.     


그 기억 속의 카이로스 시간은 주로 ‘상실의 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청춘의 시간을 보내면서 건강을 잃고 병마와 싸울 때,

창투사를 경영할 때 성과를 내고 있는데 IMF 외환위기 때 잘렸을 때,

그래서 실업자가 되었을 때,

상속문제로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아픔을 주었을 때,     


통제할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결국에는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 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입 닥치고 견뎌내고 버텨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운명에 떠밀려 가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은 운명을 거슬러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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