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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Jan 30. 2024

3할배 네팔, 포카라에 가다 - 에필로그


지나간 여행지인 포카라에 대한 기억은 채색되고 윤색이 되어간다.


아마 모든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새롭게 여러 가지 색깔로 덧입혀진다. 그 색깔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바래지만 그 경험의 기억은 오히려 선명하게 오래 남는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여행은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 삶의 마지막 시간에 나는 무엇을 기억할까? 그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일상의 반복되는 시간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내가 겪었던 시련과 아픔의 순간들,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했던 시간들만 생각날 것이다. 특히 그 기쁨은 주로 낯선 여행지에서 느낀 것일 게다. 그 여행 중의 하나가 이번 네팔, 포카라 여행이다.      


함께 여행한 친구들과 가끔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삐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철 지난 모험심을 타박하지 않고 격려해 주는 괜찮은 친구들이다. 이번 포카라 여행기는 원래 친구 P가 먼저 브런치에 쓰기로 했다. P가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길래 성질이 급한 내가 써 내려갔다. 이 또한 뜻하지 않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은 잊혀가는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 그 시간 속으로 다시 여행하는 듯하다. 기억을 정리하면서 포카라에서의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생각했다. 다음 세 가지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1. 새로운 경험을 통한 뜻하지 않은 나의 재발견

2.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3. 자유의 충만함     


캘리그래피, 2024년 1월 25일




이번 여행에서 친구 K가 친절하게도 영상으로 만들었는데 ‘3할배투어’에서 내 영상이 가장 많아 ‘주연 엄재균’이라는 오프닝을 달아주었다. 다른 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너무 설쳐댄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어쩌랴? 싫다는 친구를 데리고 함께 울트라라이트 비행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매 한 가지다. 그렇지만 낯선 곳에서 한 번쯤은 나를 실험하기 위해 도전해고 싶었다. 그래서 뭔지 딱 집어낼 수 없지만 나를 구속하는 ‘틀’을 깼다는 것에 만족한다.     


삶을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사회가 요구하는 ‘프레임’ 속에서 갇혀 살아왔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 가서 번듯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알게 모르게 나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었다. 또한 우리는 각종 편견과 선입관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나이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어리면 어리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하면서 핀잔을 준다. 젊으면 젊다고 ‘아직 나이도 새파란 게~’하고 우습게 본다. MZ세대를 두고 게으르다고 하거나 “요즘 애들 왜 그래” 하고 블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이들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을 보면서 ‘꼰대’라고 또 비하한다. 연령차별은 양날의 칼이다.

     

나이에 대한 차별은 장유유서란 미명하에 조선시대, 유교적 가부장제를 통해 전제군주를 정당화하고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아직도 그 이데올로기가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곳, 대한민국에서 연령에 대한 편견이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 경로당에 가도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에 따라 70세 먹은 노인도 커피 심부름을 할 지경이다. 최근에는 그 편견이 세대갈등으로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틀딱’, ‘꼰대’라는 노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인터넷에서 난무하다.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벌써 혐오감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포카라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나를 보고 ‘그 나이에..ㅉㅉ?’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다. 사실 세상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예전에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아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냥 ‘나답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나이 듦’도 자연스레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하나의 정형화된 틀인 ‘노인’이라는 범주에 구겨 넣을 수 없다. 모든 편견과 스스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한 인간일 뿐이다. 그 변화에 적응하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할배’로 살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이 실린 매거진 제목인 ‘3할배 투어’에서 친구가 ‘할배’라는 단어를 제안하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할배’는 통상적으로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할배’라는 단어는 ‘노인’보다 훨씬 더 심한 편견이 숨겨져 있다. ‘할배’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우리 사회에서 할배는 또 다른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공공장소에서 막무가내로 새치기하면서 항의를 받으면 반말하고. 전철에서 노약자석 양보하지 않는다고 임신부와 싸우기도 하는 그 ‘할배’다. 그나마 ‘꽃보다 할배’라는 해외 배낭 여행기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인해 다소 누그러졌지만 그 편견은 결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젊을 때,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지혜로워지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주위에 선배나 친척들을 보면서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더 세지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떠들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경우를 보곤 했다. 젊은 사람들도 자기가 뭔가 배우고 싶은 어른이 보인다면 공손하게 가르쳐달라고 할 것이다.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늘어나는 것을 왜 ‘자랑’이나 ‘훈장’이라고 생각할까? 자신을 성찰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저렇게 옹졸하고 고집불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면 먼저 내 자신이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신체적 변화를 두려워하고 수치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에는 ‘노인’을 추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젊은 세대에게는 사회적, 가정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노후연금, 연금, 건강보험 기금 등으로 국가의 공적 재정을 고갈시키는 주역으로 신문지상에서 떠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육체와 정신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일’과 ’ 사회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결코 일도 하지 않고 국가와 가정의 자원을 축내고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편견도 있다. 노인들은 교통사고를 많이 내기 때문에 더 이상 운전을 못하도록 면허증을 반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가짜 리더들의 목소리도 크다. 과연 노인들의 교통사고율이 젊은이들보다 더 높을까? 통계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스 미디어에서는 일부 교통사고를 ‘노인문제’ 이슈로 몰고 가면서 오로지 독자의 시선을 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남녀 가해 운전자에 의한 전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1,243,337건으로 나와있다. 이 중 가해 운전자가 남녀 51~60세인 경우가 전체의 19.57%(243,350건)으로 가장 많고, 남녀 65세 이상인 경우는 10.1%(133,249건)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65세 이상으로 뭉퉁거려 나온 통계값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생애주기에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30~50대 사이가 가장 교통사고를 많이 내는(약 40%) 연령대이다. 다만 사고가 났을 때 65세 이상 연령대의 치사율이 100건당 0.55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난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치다. 일단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나면 노인의 회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얘기가 옆으로 조금 샜다.

이제 나도 올해로 65세 노년의 세대로 들어왔다.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지공족’이 되었다. 어느 젊은 정치인이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백지화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다. 선거를 앞두고 오로지 젊은 층의 표만 노리고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나는 무임승차권이 나와도 결코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대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 대학에서도 올해 일 년이 끝나면 은퇴한다. 내년 2월 말 학사일정이 끝나는 시점에 공식적으로 은퇴하게 된다.      


캘리그래피, 2024년 1월 11일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지?’

‘은퇴하면 무얼 하지?’     


요즈음 항상 이런 생각에 빠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퇴 계획도 바뀐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으면 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많은 사회적, 개인적인 혜택을 받고 자랐다.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것을 가지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물류분야에서 국제표준화 업무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길 원한다.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의 기술분과위원회에서 의장을 맡고 있기에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다. 물류산업에서 글로벌한 발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물류경쟁력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오래전, ISO 기술위원회에서 개최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면 영국의 전문가인 John Mead라는 분이 존경을 받으면서 의장역을 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약 75세까지 의장역할을 차분하고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보고 ‘배울 만한 분’이고 본받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그 역할을 맡았다. 항상 그분의 섬세함과 열정을 닮고 싶다. 은퇴 후, 나의 좋은 롤모델이다. 지금 그분은 런던 주변 도시에서 정원 가꾸기와 지역구 의원으로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의 물류 표준화에도 기여를 하고 싶다. 국내에서도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그동안 쌓은 나의 지적 자산을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싶다.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하길 원한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혹은 눈치 없이 각종 위원회 회의에 가서 헛소리하고 잘난 척하면서 시간 낭비는 하지 않겠다.  

           

지난 일 년간 캘리그래프를 해보니 참으로 좋다. 집중을 할 수 있어 좋고 그 결과물을 남에게 선물할 수 있어 더욱 좋다. 내친김에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3할배투어'도 계속할 것이다.

     

아무래도 난 타고난 욕심쟁이인 것 같다.    
잘나서가 아니다. 그냥 나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너이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또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김푸름의 노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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