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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Dec 02. 2023

네팔 포카라에 가다 - 3

내가 나에게 귀한 선물을 주는 날

네팔 여행을 가기 전,


포카라 지역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곳이 ‘패러글라이딩’의 세계 3대 성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는 융프라우를 하늘에서 볼 수 있으며, 튀르키예의 페티예는 지중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은 히말라야 설산의 대자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실 예전부터 패러글라이딩을 한 번은 타고 싶었다. 양평 유명산을 산행하다가 페러글라이딩 하는 것을 보고 한 번은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함께 있던 아내의 만류로 감히 실행을 하지 못했다.      


패러글라이딩을 왜 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아닐까? 내 몸을 거대한 자연에 맡기면서 바람을 타고 유유히 날아가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자유로이 비행하고 싶었다. 그동안 남의 눈치 보느라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게 많다. 이곳은 신들의 도시, 네팔이 아닌가? 카트만두는 가는 곳마다 사원이고 신당이고 신궁이다. '내 작은 소원정도는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또한 위대한 자연, 안나푸르나를 보면서 나에게 귀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동안 가족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또한 그 알량한 내 이름 하나 드러내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싫은 일도 해야 했다. 더구나 성실하지 않다는 뒷말을 듣기 싫어서 연구 프로젝트를 할 때면 밤을 새우면서 내 몸을 얼마나 혹사했던가. 나에게 속삭였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지…”

“이제는 너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싶구나”


나의 몸은 그동안  구만리를 널뛰는 생각의 고리와 내 욕망을 따라잡기 위해 힘이 많이 들었을 게다. 이제는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다.     


몸은 내가 사는 집이다. 집이 망가지면 집은 짐이 되고 만다. 이제는 몸을 상전처럼 대우해야 마땅하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천방지축처럼 넘나들지만 몸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몸을 노예처럼 부리면 안 된다. 어느 날 몸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생각도 문제다. 생각은 늘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한다. 잡념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잡념을 줄이려면 몸을 우선 제대로 세워야 한다.


나의 육체만이 현재를 살아간다. 가끔 내가 쉬는 들숨과 날숨을 의식할 때면 내가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내 몸이 우선이다. 내 몸에 애정을 가지고 돌보고 싶다.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싶다. 앞으로의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다소 거창한 얘기지만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죽음의 섬을 탈출하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영화의 주인공 빠삐용처럼 말이다. 누군가 묻는다.


"그 나이에...?"


난 대답한다.


"이 나이가 아니면 그럼 언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 그 자체이다. 자유를 형벌처럼 선고받았다. 왜냐하면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는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근데 과연 나라는 실존은 ‘자유 그 자체’를 제대로 누리고 살았나? 돌이켜본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인 핑크 플로이드가 만든 앨범 타이틀 <더 월 - The Wall>에서 핑크는 70년대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영국의 공교육 제도를 비판하였다. 앨범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가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고하게 쌓은 사회적 벽으로 인해 틀에 박힌 관념과 교육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나를 찾아라’라고 외친다. 자신이 쌓아놓은 내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만 교육 문제와 함께 인간소외가 심각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도 어릴 때부터 잘 짜인 교육 환경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여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심지어 어머니로부터 과잉보호로 길러져 자립심을 잃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오로지 남들보다 더 앞서가는 방법만 터득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심각하게의심이나 고민하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대학에서는 오직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학과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한다. 직장에서는 더 많은 돈과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맷돌 속으로 갈아 넣지 않았던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붕어빵 틀 속에 스스로 나를 밀어 넣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똑같이 생겨먹은 붕어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틀 속에서 나온 비슷비슷한 모양의 붕어들이 서로 더 높이 더 빨리 앞서기 위해 날뛰면서 자신의 삶을 소진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본다. 우리는 70~80년대 영국처럼 똑같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나 역시 그 붕어들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것은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는지 모르는 전쟁 같은 삶이었다.


지금이라도 그 사회적 구속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그에 따르는 엄중한 책임을 감당하면서 최후의 시간에 '이만하면 후회 없이 잘 살았다 아이가..'라고 가족과 둘러앉아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죽을 만큼 마음껏 사랑해 볼 걸'

'걱정은 내려놓고 마음껏 행복을 만끽할 걸'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 걸'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갖고 살 걸'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거의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더 후회한다.     

왜 그럴까?          


자신이 한 일은 어차피 되돌이킬 수 없다.

매몰된 사건은 다소 좋게 포장하여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 한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끝없이 후회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그 사건 당시에는 후회를 할지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답게 채색이 되고 윤색이 되어간다.


근데 하지 않았던 일은 그런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곱싶어보면서 ‘그때 그 선택을 했으면 지금의 내가 더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합리화'를 하면서 위로한다. 인간은 합리화를 하는데 선천적으로 뛰어나다. 어차피 합리화를 하더라도 일단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후회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슨 일이던 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처럼...

           

그렇다.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

'이제 그냥 편안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포기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때 한번 해 볼걸’이라고 후회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몇 가지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악기를 배우는 것이다. 그동안 피아노를 연습했지만 다시 시들하여 잠시 실험을 중단하고 있다. 마음속으로 늘 '다시 해야지'라고 하면서. 은퇴할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금은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인 <감성수채 캘리그래프>를 지역 청소년수련관에서 배우고 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세 번째는 골프를 제대로 배워 그 찐 맛을 즐기고 싶다.  

   

처음에 프로에게 배우지 않고 독학을 하다가 실패했다. 오판을 한 것이다. 수영도 독학을 해서 터득했는데 골프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벌써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보기 게임’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누구는 말한다.       

    

‘그냥 명랑 골프를 치면서 즐겨~’  

   

라고 위안을 주지만 항상 라운딩 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몇 년 전부터 라운딩 후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골프 실력을 향상해 골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느 날 문득 유튜브에 “기본부터 다시 배우라"라는 영상이 있어 보기 시작했다.   


<조윤성 프로>와 나병관 프로의 <탈골골프>의 레슨 프로그램이다. 다시 스윙궤도의 기본부터 교정하고 있다. 어차피 처음부터 독학으로 시작했으니 독학으로 교정하려고 한다. 새로 배운 스윙이 무지하게 불편하고 힘들다. 근데 무려 30년을 치면서 오래된 스윙습관이 몸에 베였는데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실험 중이니 지금은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60대에 싱글 스코어를 목표로 하면서 즐기고 싶다. 그 정도 실력이 되면 티잉 그라운드에 서서 더 이상 오비나 쪼루가 날까 염려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 홀을 공략할 것인가를 머리에 그리면서 샷을 날릴 수 있을 것 같다. 노력하다가 안 되면 또 어떠랴? 나의 스윙을 바꾸는 그 과정 또한 즐기고 싶다. 어제보다는 나은 스윙폼을 만들고 싶다.      


이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성공했던 혹은 실패했던지 관계없이 내 삶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한다. 이 도전 또한 삶의 한 과정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만이 삶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까? 태어남과 죽음 사이, 그 삶 전체를 연결하여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삶의 실험이 성공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든다.


삶은 온갖 실험으로 가득 찬 이야기 보따리다.


실험을 위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가끔 넘어지고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순간의 행복을 누리면서 생의 실험 속에서 삶을 살아낸다.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더 이상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때 한번 해 볼걸    

이라고 후회하지 않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즐기고 싶다. 여하간 패러글라이딩도 나중에 ‘그때 한 번 해볼 걸’이라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단지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마음이다. 내 몸과 마음을 영화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자유롭고 싶다.


안개 속에서 발견한 갈매기 조나단의 꿈 - 한국일보 황태석 기자의 글에서


혹시 상공에서 기류의 급작스런 변화로 뒤집어진다면?

아니 착륙할 때 사고가 나서 척추 손상을 입어 불구가 되면?

혹시 이륙할 때 바람을 잘 못 타서 뒤집어져 추락하면 중상 아니면 사망일 텐데?     


친구 따라 놀러 왔다가 개죽음이 돠는 건 아닐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라는 생각을 되새기면 현지 사업가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친구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니 범생인 줄 알았는데 저런 면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호텔과 식음료 사업을 하는 현지 사업가는 아주 젠틀하다. 영어도 잘할 뿐만 아니라 성심껏 우리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즐기면서 내가 페러글라이딩 예약을 부탁했다. 현지 여행사와 통화를 하고 나더니 자신이 더 실망한 표정을 한다. 지금은 패러글라이딩이 불가능하다고. 포카라가 휴양도시로 유명해지면서 최근에 기존의 공항을 확장하여 신공항을 완공하였다. 패러글라이딩 비행과 항공기 이착륙 항로가 가까워서 통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금지한다고 한다. 평소에도 고산지대라 날씨 변화가 심해 항공기 운항이 자주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스포츠를 시도하려는데 실망했다. 한편으로 안도가 되기도 했다. ‘상황이 어쩔 수가 없잖아’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현지 사업가는 다른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고 웃으면서 제안한다.     

 

뭘까?     

'울트라라이트' 비행을 제안한다.

경량도 아니고 초경량비행은 또 뭐지? 처음 듣는 단어다.   

  

검색을 해보니 말 그대로 초경량 항공기로 비행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다. 마치 오토바이 위에 글라이드를 얹어 놓은 듯한 행글라이드처럼 생겼다. 경량비행기는 예전에 인천 근처에서 후배가 조종하여 타 본 경험이 있다. 그건 운전석과 보조석이 자동차처럼 문과 지붕도 있지만 이건 그 몸체 자체가 없다. 오토바이처럼 그냥 오픈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현지인은 남의 속도 모르고 친절하게 또 다른 액티비티를 제안한다. 짚라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고 긴 짚라인이라고 자랑한다. 높은 산악지역이라 당연히 드라마틱하겠지. 그 생각의 끝에 다시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나중에 ‘그때 한번 해볼 걸’이라는 후회는 그만하자. 트레킹은 짧게 하니까 생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익스트림 액티비티라도 해보자 '.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는데 딴 말을 하면 안 되지. 일단 울트라라이트 비행예약을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장으로 갔다.


저 멀리 지평선에는 이미 해가 떠오르려고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장관이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귀한 선물을 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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