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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개구리의 삶 (22)

대화의 기술

by 촌개구리

몇 년 전 태풍으로 비가 억수로 내리던 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10층에 사는 초등학생과 한 시간 정도 갇힌 적이 있다.


학생은 엄마 심부름으로 쓰레기 버리고 오던 착한 친구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감에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래서 "고장 신고해서 지금 기사가 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안심시키고 "좋아하는 것은 뭔지? 학교생활은 재밌는지?" 등등 공포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그 친구와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타면 모른 척하며 뻘쭘하게 서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좀 어색하다. 그래서 참을성 없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게 되는데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물론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하면 그날은

기분이 두배로 좋다.


특히 어린아이와 부모가 함께 타면 어린아이에게 꼭 칭찬으로 인사를 하는 편이다. "누가 사주셨는지 모자가 이쁘다. 신발이 참 멋지다" 등등


그러다 그 어린아이가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한 날은 천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서양 사람들보다 인사와 대화가 좀 서투르다. 먼저 인사도 잘 안 하지만 초면에 나이, 고향, 직업 등 대부분 호구 조사하듯 공통점 찾기에 급급하다.


이보다는 "올여름 더워서 힘드셨죠" "요즘 산책하기 너무 좋죠" "강아지가 참 귀엽네요"라고 대화의 물꼬를 트면 자연스럽고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본 아내가 집에 오면 "밖에서는 그렇게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집에서는 왜 입 다물고 있냐"라고 잔소리한다.


이젠 집에서도 대화를 잘한다고 칭찬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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